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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 정의선 회장 체제로 전환되면서 중단됐던 지배구조 개편이 다시 재개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로 얽혀 있는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사는 14일 오전 임시 이사회를 개최하고,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회장 선임 안건을 보고했으며, 각사 이사회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정의선 회장은 지난 2018년 9월 14일 그룹을 총괄하는 수석부회장에 선임된 이후 2년여만에 공식적인 총수가 됐다. 병원에서 요양 중인 정몽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2세경영이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3세경영 시대가 도래했다.
정의선 회장 체제가 되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배구조 개편을 빼놓을 수 없다. 지배구조 개편은 순환출자 및 일감 몰아주기 해소를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관문이기 때문에 향후 재개될 움직임에 이목이 집중된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2018년 3월 28일 불씨가 지펴졌다. 당시 발표한 개편안의 기본 골자는 이렇다.
현대모비스를 투자 및 핵심부품 사업 부문과 모듈 및 AS 부품 사업 부문으로 인적분할 한 뒤 모듈 및 AS 부품 사업 부문을 현대글로비스에 합병시키는 것이다. 남아있는 현대모비스 사업부문(존속법인)은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현대모비스를 지배하기 위해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매입해 최대주주가 된다는 구상이다. 재원은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등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순환 출자 고리가 끊어지고,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우려도 해소된다. 즉, 지배회사인 현대모비스를 통해서 현대차와 기아차를 지배하는 단순 구조가 된다. 정 명예회장 父子→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단순화된다.
하지만 복병이 나타나면서 차질이 생겼다.
행동주의 해지펀드인 엘리엇은 한 달 뒤인 2018년 4월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보통주 10억달러어치(당시 1조500억원 상당)를 보유하고 있다며 갑자기 등장했다. 실제로 엘리엇은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6%, 기아차 2.1% 지분을 보유했다.
엘리엇은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반대했다. 무엇보다 분할 합병 비율을 놓고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확대됐고,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도 잇따라 반대 의견을 권고하자 계획이 철회됐다.
결국 2018년 5월 21일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각각 이사회를 열어 현재 체결돼 있는 분할합병 계약을 일단 해제하기로 했다. 분할합병 안을 보완·개선해 다시 추진키로 한 것이다.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하면서 주주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당시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은 더욱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여러 의견과 평가들을 전향적으로 수렴해 사업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보완해 개선토록 할 것”이라며 “주주분들과 시장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폭넓게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중단시킨 엘리엇은 더욱 공세를 이어갔으며, 지난해 정기주총을 앞두고 고배당과 부적절한 사외이사 선임 등 무리한 주주제안을 했다.
하지만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과 국민연금이 엘리엇 제안에 대부분 반대를 하면서 지난해 3월 열린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정기주총은 압승으로 끝났다.
특히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경영권 승계에 따른 지배구조 개편이 임박했음을 예고했다. 회장 선임이 어느 정도 예견된 대목이다.
표대결에서 패배한 엘리엇은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지난 연말에 그동안 보유하고 있던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6%, 기아차 2.1%의 지분 모두를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이상 주주제안 등으로 배당이나 경영권 간섭, 시세 차익 등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눈엣가시가 사라지면서 수정 보완된 지배구조 개편안이 다시 추진될 것이란 기대감이 제기됐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 참석한 현대모비스 고영석 기획조정실장(상무)은 “향후 지배구조 개편은 시장이나 주주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배구조 개편이 그룹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며 “지난 2018년 개편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시장 친화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새 지배구조 개편안은 시장과 주주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향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에서는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은 현대차 2.62%, 기아차, 1.74%, 현대모비스 0.32%, 현대글로비스 23.29%, 현대엔지니어링 11.72%, 현대오토에버 9.57% 등이다.
여전히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글로비스 지분 활용이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분할 합병 비율을 파격적으로 개선할 수도 있고, 정몽구 명예회장이 갖고 있는 지분과의 스왑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차 5.33%, 현대모비스 7.13%, 현대글로비스 6.71%, 현대제철 11.81% 등을 보유하고 있다.
막대한 세금을 감수하더라도 상속 및 증여를 통한 정공법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차정몽구재단에 지분을 기부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공익법인에 주식을 기부하면 지분율 5%까지 상속 및 증여세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급변하는 대내외 경영환경과 그룹의 미래 방향성을 고려하고, 시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해 최적의 시점과 지배구조 개편안을 검토 중이며 구체적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개편안이 마련되는 대로 시장과 적극 소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