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준의 재계 프리즘] 경영권·지분 다 맡긴 마이너스 옵션특혜설 불식할 경영성과 내야… KCGI 분쟁 그 이상의 의미
  • ▲ 조원태 회장.ⓒ한진그룹
    ▲ 조원태 회장.ⓒ한진그룹

    정부와 산업은행이 8000억원을 투입해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도록 특혜를 줬다는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경영권을 위협받던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이 사재 한푼 들이지 않고 백기사를 얻고 라이벌 회사까지 인수하게 됐다며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세간의 궁금증은 조원태 회장이 왜 이런 논의에 참여하고 이른바 7대의무까지 떠안으면서 수용했느냐에 쏠린다.

    첫번째 의문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대한항공이 자체 상황도 힘든데, 아시아나까지 품고 가는 것이 맞는건지 혹은 가능한건지에 대한 것이다.

    두번째는 운임인상도 안하고 구조조정도 없이 경영성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원초적인 물음이었다.

    자칫 경영권도 내주고 지분 마저 빼앗겨 회사를 잃을 수도 있겠단 우려도 들었다.

    조 회장의 결단은 회사를 살리고 '수송보국'의 유업을 잇겠다는 절박함이라는게 대한항공 안팎의 얘기다.

    대한항공은 올해 1분기 영업손실 566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곧장 유동성 위기에 몰렸고, 4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2000억원의 자금을 긴급 지원받았다.

    비용절감과 화물사업 호조 덕에 2분기에는 영업이익 1484억원을 달성했다. 3분기도 영업이익 76억원을 기록하며 그나마 흑자기조를 이어갔다. LCC(저비용항공사)들이 대규모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선방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 임직원들은 순환휴직과 급여 반납 등으로 고통분담을 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여객 수요가 언제쯤 회복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화이자 등 제약사들의 백신 개발 소식이 들리기는 하지만 항공은 3~4년 뒤에나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한항공은 내년 운영자금을 위해 1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신청도 검토 중이다. 현재는 아시아나 인수를 최우선으로, 기안기금 신청을 일단 내년으로 미뤘다. 정부 지원 없이는 생존을 확신할 수 없는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에 아시아나 인수를 제안했다. 조원태 회장 입장에서는 거부하기 힘든 압박이자 부담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를 거부한다면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넘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지원을 끊으면 대한항공은 한순간에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 이미 조 회장은 국내 1위, 세계 7위 한진해운이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KCGI를 비롯한 3자연합의 위협으로부터 한진그룹 경영권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한항공 파산이라는 비극적 결말은 원치 않았을 것이다. 창업이념인 '수송보국(수송으로 국가에 기여한다)' 하나만 생각하고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여겨진다.

    사모펀드인 KCGI는 이런 조 회장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모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일정기간 내에 수익을 올려야 하는 태생적 특징을 갖고 있다. KCGI는 산은의 개입으로 한진칼 경영권 확보에 변수가 생겼고, 향후 엑시트(EXIT, 투자회수) 타이밍을 잡기 어려워졌다.

    국가, 경제, 일자리, 수송, 항공산업 같은 단어에 숨겨진 추상적이고 함축적인 의미를 이해하기도 힘들다. 엄밀히 말하면 조 회장이 느끼는 의미와는 전혀 다를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조 회장은 유증 이후 10.66%의 한진칼 지분을 갖게 될 산업은행과 ▲산은이 지명하는 사외이사 3인 및 감사위원 선임 ▲주요 경영사항 사전 협의 및 동의권 준수 ▲윤리경영위원회 설치 및 운영 ▲경영평가 및 감독 책임 ▲통합작업(PMI) 계획 수립과 이행 ▲대한항공 주식 담보·처분 제한 ▲조항 위반 시 5000억원 위약금과 손해배상 책임, 대한항공 신주 처분 권한 위임 및 질권 설정 의무 등 7대 의무 약속을 맺었다.

    형식적으로만 조원태 회장이 경영권을 갖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산업은행과 공동경영을 하기로 약속한 셈이다. 오히려 혹독한 경영간섭과 견제를 보장해 준 꼴이다. 지금은 조 회장의 든든한 우군이지만, 언제든 잠재적 위협요인으로 바뀔수 있다는 얘기다.

    조 회장도 7대 의무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향후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산은의 제안을 수용하는 결단을 내린 것.

    최근 수년간 한진그룹은 갑질의 대명사로 찍혀 숱한 고충을 겪어야 했다.

    지난 2018년 이른바 '물컵 사건'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정부는 11개 사법 및 사정기관을 총동원해 20차례 가까이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오너 일가와 한진그룹을 샅샅이 털었다. 검찰은 조양호 회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에 다섯번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그런 정부가 갑자기 대한항공과 조원태 회장이 예뻐진 건 아니다. M&A가 무산되면서 애물단지가 된 아시아나를 떠맡을 곳이 대한항공 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정부와 산업은행은 여러 대기업들에 아시아나 인수를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 당했다. 특혜를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옭아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조 회장은 대승적 차원에서 항공산업의 몰락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을 선택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심화되는 국내 항공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항공산업의 근본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결단으로 볼 필요가 있다.

    특혜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보면 조원태 회장의 결단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