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부터 부실벌점 산정 '단순 합산' 방식 변경현장 많은 대형사 부담…중소사 주택사업 퇴출 가능성10대 건설사 중 7곳 벌점…270만호 공곱 차질 우려도
  • ▲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연합뉴스
    ▲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연합뉴스
    "현 상황에서 선분양까지 막는다는 것은 건설업을 접으라는 얘기죠."

    자잿값 인상과 돈맥경화 등 이중고에 시달리는 건설업계가 선분양 제한이라는 또다른 악재에 맞닥뜨리게 됐다. 

    내년 1월부터 선분양을 제한하는 부실벌점 산정방식이 ‘현장별 평균’에서 ‘단순 합산’으로 바뀌면서 벌점이 누적된 건설사들의 주택사업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아파트 공급물량의 70~80%가량이 선분양으로 이뤄지는 국내 주택시장에 이같은 조치는 대형건설사의 주택사업 위축은 물론 중소·중견사의 시장 퇴출, 줄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부실공사 벌점산정 방식을 평균에서 합산으로 변경해 시공사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건설기술진흥법이 본격 시행된다.

    이 법안은 ▲벌점 산정방식 변경 ▲부실벌점 측정기준 명확화 ▲안전·품질을 위해 노력한 업체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등이 골자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벌점 산정방식이다. 이전까지는 부과 받은 벌점을 점검받은 현장수로 나누는 평균방식을 사용했다. 즉 부실시공 문제가 적발됐더라도 현장수가 많으면 벌점으로 인한 불이익이 적어 대형 건설사에게 유리했다. 

    예컨대 10개의 건설현장중 2개현장에서 각 1점씩 벌점을 받은 경우 지금까지는 전체 점검사업장 대비 비율을 고려해 0.2점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단순합산으로 2점이 벌점으로 부과된다.

    즉 현장에서 발생한 벌점을 그대로 합산 적용하기 때문에 사업장이 많은 업체일수록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현행법은 부실벌점 정도에 따라 선분양 시기를 제한하고 있다. 벌점이 1~3점 미만이면 전체동 지상층 기준 3분의1층의 골조공사 완료후, 3~5점미만은 3분의2 층수 골조공사 완료후, 5∼10점 미만은 전체 동의 골조공사후, 10점이상은 사용검사(준공) 이후 분양을 할 수 있다.

    국토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2019년 하반기~2022년 상반기 10대 건설사 중 DL이앤씨와 현대엔지니어링, HDC현대산업개발을 제외한 7개 건설사가 부실벌점을 받았다.

    누계평균벌점을 기준으로 하면 삼성물산이 0.46으로 가장 많았고 SK에코플랜트가 0.20, 포스코건설이 0.12로 뒤를 이었다. 

    중소·중견건설사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단순 합산방식을 적용하면 1점차로 공공기관 발주를 받을 수 없게 돼 치명타가 될 수 있어서다.

    대형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대형사는 현장이 많은 만큼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재정이 부족한 중소사는 생존을 위협받는 등 모두가 고통받는 법안"이라며 "게다가 한개 현장을 운영하는 업체와 수십, 수백개 현장을 가진 업체의 현장에서 발생한 부실에 같은 불이익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새 방식을 적용할 경우 부과 벌점이 기존 대비 평균 7.2배, 최고 30배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재 대상 건설사도 급증할 것으로 우려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통계결과 단순합산으로 벌점 산정 방식이 바뀔 경우 기존보다 107개 많은 265개사가 선분양 제한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100위이내로 한정하면 현행 방식은 제재 대상이 2개사에 불과했지만 합산 방식에선 40개사로 급증했다. 

    선분양제는 건설사가 공사전 수요자로부터 미리 분양대금을 받음으로써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현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로 인한 자금경색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선분양까지 제한되면 건설사들의 경영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벌점으로 인해 선분양이 막히면 정부의 주택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270만호라는 적지 않은 공급물량을 계획해 놓고 정작 건설사의 주택사업을 제한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라며 "요즘처럼 시장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선분양까지 막히면 주택사업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영덕 건산연 선임연구위원은 "변경된 방식은 벌점제도 운영목적에 부적합할뿐아니라 건설업계의 성장 저하, 정책목표 달성 어려움, 국민경제 악화 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의 벌점제도가 보여주기식에 불과해 강화된 대응수단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선분양은 시공사의 자금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하자나 부실공사, 과대 분양광고 등의 원인이 된다"며 "시공사와 수요자가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유연성 있는 정책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