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인받고도 연기하거나 아예 후분양 전환서울-수도권-광역도시 정비사업 중심 공급PF 난항에 자체사업 축소 보수적 선별수주
  • ▲ 221024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연합뉴스
    ▲ 221024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연합뉴스
    "예전 같았으면 이미 사업계획을 발표했을 텐데 아직 구체적인 분양 일정도 수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시장이 좋지 않아 공급을 많이 못 했는데, 내년에는 현장이 더 줄 것 같아요. 분양 규모를 대폭 줄이고 기존 현장을 관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 같습니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

    청약시장 분위기가 빠르게 가라앉으면서 건설사들도 내년 신규 분양시장 전망을 보수적으로 보고 분양계획을 짜는데 신중한 모습이다. 미분양 우려가 큰 지역은 늦추고, 사업성이 담보된 도시정비사업 중심으로 분양한다는 계획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건설사들이 공통으로 꼽은 새 분양 전략은 '미루기'다.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지고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청약시장에 한파가 몰아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최상급 입지가 아니라면 분양을 보류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서 12월 중 분양계획을 잡았던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시그니처(역촌1구역 재건축)'는 분양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애초 2일 특별공급 후 일반분양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특별공급 일정을 9일로 한 차례 변경한 뒤 다시 16일로 날짜를 미뤘다가 아예 잠정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현장은 2007년 정비구역 지정 후 이듬해 조합을 설립하며 속도를 내는 듯했지만, 이후 시공사가 세 차례나 바뀌고 조합 내 갈등으로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는 등 잦은 내홍으로 사업이 장기간 지체됐다. 그나마 지난해 6월 착공하면서 일반분양 얘기가 나왔지만 무산됐으며 올해 분양시장에서도 연기됐다. 빨라도 내년 초에나 일반분양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승인까지 받았지만, 착공 전 분양을 미룬 현장도 있다.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 C18블록에 주상복합 '대방 엘리움'을 짓는 시행사(엘리움주택)는 이 현장의 분양을 미루기로 하고 화성시청에 착공신고와 감리 등 후속 절차 연기를 요청했다.

    아예 선분양을 포기하고 후분양으로 돌리는 현장도 나타났다. 경기 안양시에서 11월 분양 예정이었던 '시그니티 인덕원 오피스텔'은 견본주택까지 만들었다가 최근 후분양으로 전환했다. 10월 분양한 전남 광양시 '더샵 광양 라크포엠'도 계약자들에게 '입주자 모집 취소 및 분양 연기 검토 중'이라는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계약취소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부 조합이나 시행 측에서 분양을 강행하자는 곳도 있어 조율에 애를 먹었지만, 최근 '올림픽 파크 포레온(둔촌주공)'과 '장위 자이 레디언트(장위4구역)' 분양이 기대보다 저조한 결과를 보이자 이런 주장도 거의 사그라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주요 건설사들은 내년 분양계획 일정과 규모를 조율하고 있다.

    분양 전망을 기존보다 보수적으로 계산하고, 내부 기준에 미달하는 단지들은 시장이 나아질 때까지 사업을 잠정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지역은 서울과 수도권, 광역도시 위주로 제한하고 입지가 좋고 일반분양 물량이 많지 않아 미분양 가능성이 낮은 도시정비사업 위주로 분양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대형건설 C사 관계자는 "물가, 금리 인상으로 내년 신규 분양시장은 다소 침체할 것"이라며 "분양 성적이 양호한 서울과 수도권, 광역도시 단위의 도시정비사업 위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주는 더 선별적으로 진행할 전망이다. 집값이 계속해서 떨어지면서 미분양뿐만 아니라 미입주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직접 토지부터 조달하는 자체사업은 물론, 도급사업까지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중견건설 D사 관계자는 "토지를 직접 조달하고 공사까지 진행하려면 여유자금이 풍부한 회사가 아니고서야 PF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데, 최근 금리 인상으로 금융비용 압박이 적지 않다"며 "게다가 분양까지 어렵다고 하면 아예 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급사업을 주로 진행하는 대형건설 E사 관계자는 "정비사업의 경우 조합원 요구에 따르다 보면 정해진 공사비를 맞추기가 어려워서 원래 입지나 사업성을 까다롭게 따진다"며 "최근에는 미분양 우려에 사업이 중단되는 등 또 다른 리스크가 생길 수 있어 여러모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때문에 수주부터 분양까지 경쟁이 심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업계 내부에서는 과도한 경쟁의 부작용을 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대형건설 F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죄다 선별수주에 나서는 지금도 한남2구역 같은 곳은 경쟁이 치열한 것을 보면 사업지마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해질 게 분명하다"며 "분양 경쟁도 점점 심각해져서 과대·과장 광고가 증가하는 등 소비자들이 꼼꼼히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분양시장 수요자 10명 중 7명이 내년 미분양 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지고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부동산 시장에 한파가 몰아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리얼투데이가 지난달 29~30일 오픈서베이를 통해 전국 20~60대 1000명을 대상으로 '2023년 분양시장 수요자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6%가 내년 미분양 부동산이 늘어날 것이라고 답변했다. 미분양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6.8%에 불과했다.

    미분양이 늘어날 것이라고 본 응답자 중 73%는 '기준금리 인상'을 이유로 꼽았다. 대출이자 부담으로 매수심리가 위축되면서 내년 미분양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그 뒤를 '공급 물량(11.4%)', '고분양가(8.4%)', '대출 규제(6.2%)' 등이 따랐다. 그 외 기타(0.9%) 응답으로는 '저출산'과 '경기 침체'가 거론됐다.

    김운철 리얼투데이 대표는 "금리 인상, 분양가 상승 등으로 수요자들이 분양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올해에 이어 내년 분양시장도 하강 국면 기조를 유지하고 미분양 또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