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채 금리 4%대 임박… 유동성 쏠려은행권 수신경쟁 본격화… 자금 블랙홀건설업계 자금난… 중소형사 줄도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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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1980년대 냉전이 종식된 이후 미국 국채 수익률은 꾸준히 하락했다. 동맹적 제국주의를 내세운 미국의 화폐 정책은 한국을 비롯한 신흥 개발도상국의 글로벌 금융시장 진입을 허락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의 경상수지는 매년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했지만, 기축통화 지위는 공고해졌다. 그런 미국이 변심을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제국 패권주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국채 수익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을 위협하며 전 세계에 뿌렸던 달러를 쓸어담고 있다. 금융 체력이 여물지 못한 한국에는 작지 않은 위기다. 치열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국내 금융사들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최근 국고채 금리가 4%를 바라보며 상승하는 가운데,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예금금리를 인상하고 은행채 발행에도 적극 나서는 등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일부 기업들의 자금난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시중 유동성이 한쪽으로 쏠리며 자칫 작년 국내 채권시장을 강타했던 '레고랜드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부동산시장 악화와 부동산PF 부실 영향으로 크고 작은 건설사들의 줄도산 가능성마저 감지된다. 

    15일 국내 채권시장에 따르면 국고채 10년물 수익률(종가기준)은 지난달 22일 3.984%로 연중 최고치를 찍은 뒤 이달 들어서도 꾸준히 4%대를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긴축 정책으로 인한 달러가치 상승 영향으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투자자금이 미국 국채로 집중되면서 미국채 수익률이 올랐고, 국내 채권시장이 이에 동조화하면서 국고채 금리도 덩달아 상승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지난달 16일 15년 만에 최고치인 4.258%를 기록했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단이 된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2008년 9월) 직전인 2008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고채 금리가 상승하자 은행채 금리도 오르고 있다. 14일 종가기준 은행채(AAA) 5년물 수익률은 4.413%로 지난달 말(4.281%) 대비 13.2bp(1bp=0.01%p) 올랐다. 지난 4월 10일 연중 최저치(3.810%)와 비교하면 무려 60.3bp 상승했다.

    이런 와중에 은행들은 조달비용 부담에도 은행채 발행을 더 늘리고 있다. 지난달 발행규모는 20조 9800억원으로 전월(18조 6700억원) 대비 약 15%(2조 3100억원) 증가했다. 이달 들어선 이미 발행액이 10조원을 넘어서는 등 8월 대비 규모가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은행들이 최근 은행채를 경쟁적으로 늘리는 이유는 작년 하반기 판매한 고금리 정기예금 상품의 만기가 곧 도래하기 때문이다. 자금 마련이 시급해지자 채권 발행과 더불어 예금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3.8~3.9% 수준까지 올랐고,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는 연 4% 예금 상품을 선보이며 금리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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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은행권이 '자금 블랙홀'이 되면서 풍선효과로 일부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은행과 마찬가지로 기업들도 자금조달을 위해 회사채를 발행하는데, 국고채 수익률 상승 여파로 조달비용이 늘어난 것도 모자라 수요마저 은행들에 빼앗겨 양쪽으로 핀치에 몰렸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건설업계다. 부동산시장 불황에 부동산PF 부실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유동성 리스크를 겪고 있어 중소형 업체들을 시작으로 줄도산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실정이다.

    지난 7일 서울회생법원은 업계 중견 A건설사의 회생 절차를 개시했다. 오너리스크를 겪고 있던 이 회사는 자금난에 결제 대금을 연체하면서 결국 회생 절차를 밟게 됐다. 이처럼 올해 중 회생 절차에 들어간 중소형 건설사는 A사 포함 총 5곳에 이른다.

    대형 건설사들도 자금난 해소가 마땅치 않다. 국내 10대 건설사가 내년 1분기까지 상환해야 할 회사채 규모가 2조 3000억원에 달하는데, 공모채 발행이 여의치 않자 연 10%에 달하는 고금리 사모채까지 손을 대고 있다.

    B건설사는 부동산PF로 인한 재무 불확실성이 커지자 '울며 겨자먹기'로 약 2000억원 규모 단기 차입을 결정했다. 이 회사는 상반기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이 'A'에서 'A-'로 하향 조정되며 공모채를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

    다만, 한국은행은 지난 14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에 큰 어려움이 생긴 것은 아니라는 분석을 내놨다.

    일반기업 공모 회사채가 1분기 중 9조원 순발행으로 집계됐으나, 4월부터 순상환 기조로 전환돼 2분기 3조 4000억원, 7~8월 1조 7000억원 순상환됐다.

    이에 대해 한은측은 "회사채 발행 부진은 시장 불안, 투자수요 부족 등 발행 여건이 악화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일부 기업의 선발행을 통한 차환자금 확보, 금리 측면에서의 회사채 조달 유인 약화, 향후 경기 불확실성 등에 따른 중장기 자금 수요 감소 등에 기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분간 회사채 발행시장에서 순상환 기조가 이어질 수 있겠으나 양호한 투자 수요, 은행 대출 활용 등을 고려할 때 기업의 조달 여건이 크게 악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