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처VS시공사, 공사비 증액두고 생존을 건 다툼중 발주처, 물가변동 배제특약 근거로 공사비인상 거부 시공사 측 "생떼처럼 비춰지겠지만 생존 위한 투쟁"국토부, 표준도급계약서 개정…대법판례로 '유명무실'
  • ▲ 아파트 공사현장. ⓒ뉴데일리DB
    ▲ 아파트 공사현장. ⓒ뉴데일리DB
    공사비인상을 요구하는 시공사와 이를 저지하는 발주처간 기싸움이 치열하다. 일단 상황은 발주처가 우세해 보인다. 계약때 체결한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근거로 공사비 증액은 어렵다고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최근 물가변동조정방식을 구체화한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 개정안을 내놨지만 강제성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발주처와 시공사간 눈치싸움이 장기화하면서 국토부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강요 없는 표준도급계약서 개정안을 내놔 되려 현장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공사비인상을 둘러싼 갈등은 전국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최근 안양물류센터를 시공한 DL건설은 공사비 400억원을 더 올려달라고 요구하며 발주처인 LF그룹 및 코람코자산신탁과 대립중이다. 

    안양물류센터 프로젝트는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일대에 연면적 9만5474㎡ 지하 2층~지상 8층 규모 물류센터를 짓는 사업으로 도급액은 약 1190억원에 달한다.

    DL건설은 프로젝트 수행중 사업장내 오염토 발견으로 공사기간(공기)이 6개월이상 지연됐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자잿값이 뛰어 공사비증액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DL건설 분기보고서 원재료 매입현황을 보면 루베(㎥)당 레미콘 매입단가는 2021년 7만1000원에서 2022년 8만300원, 올 3분기 8만8700원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발주처 측은 계약서에 공사기간 발생한 물가변동은 공동책임이라고 한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명시돼 있는 만큼 공사비 증액분 전부를 받아들이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양측간 의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DL건설은 LF그룹과 코람코자산신탁 본사앞에서 릴레이시위를 벌이며 발주처 측을 압박하고 있다. 

    쌍용건설과 KT도 공사비인상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쌍용건설은 2020년 공사비 967억원으로 KT 판교 신사옥공사를 수주했다. 하지만 원자잿값 상승과 코로나19 등 여파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에 물가인상분을 반영한 공사비 171억원 증액을 요청했지만 KT는 계약서상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근거로 거절했다.

    지난 10월 쌍용건설과 협력업체 직원들은 KT 판교 신사옥현장에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이건은 국토부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된 상태로 내년초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도시정비에 이어 일반도급사업까지 공사비 갈등이 불거지다보니 건설사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라며 "무작정 공사비를 올려달라며 건설사가 생떼를 쓰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실상은 생존을 위해 받아야 할 공사비를 요구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직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공사비갈등으로 몸살을 앓는 사업장이 전국곳곳에 산적해 있다"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물가변동 배제특약 탓에 공사를 따내도 수익은커녕 손해만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건설업계 전반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 단순히 민간공사라는 이유로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 KT 신사옥 공사비 갈등 규탄 시위 현장. ⓒ쌍용건설
    ▲ KT 신사옥 공사비 갈등 규탄 시위 현장. ⓒ쌍용건설
    업계 일각에선 이 같은 국토부의 소극적인 대응이 공사비갈등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가 분쟁조정위원회 신청을 통한 수동적 중재가 아닌 선제적으로 개입해야 시공사와 발주처간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다는 게 건설업계 주장이다.

    물론 국토부가 손만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22년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이 빈번해지자 국토부는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을 인정하지 않을 상당한 이유가 없다면 그 부분에 한정해 도급계약 내용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이는 계약상 이익을 과도하게 제한할 경우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법적으로 무효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해당 유권해석 경우 물가변동 배제특약 유효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이미 나와있어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국토부가 공사비 조정안으로 제시한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 개정안도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여론에 직면했다.

    개정안은 공공공사에 적용중인 물가변동 조정기준을 민간공사에 반영하는 것이 골자다. 모호했던 공사비 조정액 산출방법 등을 구체화해 발주자와 시공사간 협상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표준도급계약서에 강제성이 없어 여전히 발주처 승인 없이는 공사비 인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애초에 발주처와 시공사간 관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인 만큼 당사자간 원만한 협의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분쟁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해도 갈등이 당장 해소되는 게 아니고 조정 기간에 불어나는 공사비도 또다른 부담이 된다"고 밝혔다.

    중견건설 B사 관계자는 "합리적인 공사비 조정이 가능한 법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단순 중재만으로는 공사비 갈등 이슈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비 조정과 관련해 강제력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모든 민간계약을 공공이 규제할 수는 없다"며 "현재로선 계약시 공사비 조항이나 문구를 명확히해 분쟁 소지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