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승계 '벽'에 막혀중소 → 중견 성장 꺼려무협 "OECD 평균(26.5%) 수준으로 내려야"
  •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 상속세가 4월 총선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 개편을 추진 중인 정부·여당은 우리 수출을 지탱하고 있는 강소 기업들이 살인적인 조세 부담에 성장을 기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에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수출에 오랫동안 기여한 강소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가혹한 상속세 잣대를 대는 현행 가업 승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9일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수출기업의 원활한 가업 승계를 위한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준 수출 업력 30년 이상인 기업의 최근 5개년(2015~2019년) 연평균 수출 실적은 1473만달러로 10년 미만 기업 평균 실적(94만달러)보다 15.7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 수출 업력 30년 이상 기업의 평균 수출 품목 수는 13.1개, 수출 대상국 수는 7.9개 국으로 10년 미만인 기업보다 각각 4.7배(2.8개), 4.6배(1.7개 국)에 많을 정도로 알짜 수출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팬데믹(2020~2022년) 기간에도 수출 업력이 30년 이상인 기업의 연평균 수출 실적은 1092만 달러, 10년 미만인 기업의 평균 수출 실적은 133만 달러로 나타났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강소기업 제품을 선호하는 수요가 상수로 자리잡았으며 이는 팬데믹 등 큰 폭의 시장변화에도 알짜 '캐쉬카우'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의미다.
  • 그러나 생산가능인구 감소, 최고 경영자(CEO) 고령화 등으로 장수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나, 과도한 조세 부담, 엄격한 가업 승계 지원 제도 요건 등이 원활한 가업 상속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어지고 있다.

    KITA 설문결과, 원만한 가업 승계는 △해외 시장 진출(57.3%), △기술 개발 및 투자(43.2%), △기업가정신(37.8%), △고용(35.0%) 확대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가업 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조세부담이 74.3%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 세금 문제로 가업을 매각 또는 폐업을 고려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42.2%에 이르렀다

    실제로 한국의 상속세 최고 명목세율(직계비속 기준)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은 2위이며, OECD 회원국 중 직계비속에 상속세를 부과하는 18개국의 평균(26.5%)을 크게 상회한다.

    日, 가업승계시 상속·증여세 2/3 유예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상속세율을 유지 중인 일본은 2009년 사업승계 일반조치에 이어 2018년 사업승계 특례조치를 도입했다.

    가업을 승계한 후계자에게 부과된 상속세와 증여세 의 2/3를 납부유예하는 것은 물론, 유예기간도 사실상 무제한으로 늘렸다. 납부를 유예하더라도 부과된 세금에는 지연이자나 물가상승률이 반영되지 않는다. 얼마든지 사업을 다시 가동시켜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또 상속·증여셰 납부 목적으로 저리의 정책금융을 공급해 세금을 천천히 내면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기간을 할해했다.

    천문학적인 상속세 납부를 위해 보유 지분을 매각하거나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기업 주가 전체를 하락시키는 한국의 제도와는 다른 점이 많다.
  • 공익법인 주식 취득 규제 완화해야

    막대한 상속세를 걷어가는 것보다 기업이 공익법인을 통해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방법도 거론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에게 의뢰한 '공익법인 법제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자산지원재단(CAF)이 발표한 지난해 세계기부지수에서 한국은 38점으로 전체 조사 대상국 142개국 중 79위에 그쳤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등이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 공익법인의 주식 취득과 행사를 지나치게 개입해 사회 환원을 위축시켰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공익법인의 전체 주식의 10% 이상을 주식 취득으로 출연받으면 초과분에 증여세를 부과하는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은 면세 한도가 5% 수준에 그친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해외 주요국에는 없는 불합리한 규제라고 보고서는 꼬집었다.

    최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공익법인이라는 지속가능한 형태로 이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공직거래법상 의결권 제한 규제를 폐지하고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주식 취득 면세 한도를 미국 수준인 20%로 확대하는 등 규제를 완화하면 기부문화가 확산하고 기업 승계 활성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상속세율, OECD 수준으로 맞춰야

    기업인들은 가업 승계 지원 제도 이용과 관련해 정보 부족, 까다로운 사전·사후 요건 등을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한다.

    보고서는 우리 무역업계의 원활한 가업 승계와 수출 장수기업 확대를 위해 ①상속세율 인하, ②최대 주주 주식 할증 완화, ③상속인 범위 확대, ④가업 상속 지원 제도 사전·사후 요건 완화 등 정책 개선을 제언했다.

    먼저 OECD 회원국 중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들의 평균(26.5%) 수준으로 인하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기업에 주식 시장 가치의 20%를 일률적으로 할증해 상속 증여 재산을 평가하는 지금의 방식을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대신 미국‧독일‧일본 등과 같이 기업 특성을 고려해 할증 또는 할인 평가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평가 방법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상속인 범위도 자녀‧배우자, 부모, 형제 등에서 손자‧손녀, 전문 경영인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고령화‧저출산으로 가업 승계가 늦어지고 적임 상속자가 줄어드는 가운데 전문경영인의 역량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벨기에 등은 가업 상속 지원 제도 이용 시 기업 규모에 따른 제한을 두지 않는다.

    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상속 공제 제도 이용에 고용 유지 사후 요건을 부과하지 않고, 일본은 사후 5년간 80% 이상 고용 유지 의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사유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수출 업력이 길수록 수출 규모, 품목 수, 수출 대상국 수, 고용 인원 등 많은 측면에서 우리 경제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정부는 ‘기업 업력이 곧 수출 경쟁력’이라는 생각으로 무역업계의 가업 상속을 적극 지원해 수출 장수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이어 "최근 CEO 고령화, 장수기업의 소멸 비중 상승 등 기업의 영속성을 제한하는 경영 여건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과도한 상속세율과 까다로운 가업 상속 지원 제도 요건이 가업 승계를 저해한다"며 "기업들이 세계를 무대로 글로벌 기업들과 동등한 여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