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발표 후 기관투자자 기술주 팔고 저PBR로 자금 쏠림이미 주가 테마성 움직임…기관이 단기급등 견인과거 정책 수혜주 급등 후 주가 제자리…옥석 가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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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기술주에서 1배 미만의 주가순자산비율(PBR) 종목들로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이 급격하게 쏠리고 있다. 구체적인 정책 발표가 나오기도 전부터 저PBR 관련주들의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자칫 테마성 장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는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13일까지 현대차를 5156억원어치 순매수했다.현대차를 포함해 해당 기간 기관투자자의 순매수 상위 종목 대부분은 대표적인 저PBR 종목으로 꼽히는 은행, 보험, 지주사, 자동차 섹터다.기관투자자들은 이 기간 신한지주를 2361억원어치, 삼성물산을 1604억원어치, LG를 1602억원어치, SK를 1555억원어치, 하나금융지주를 1133억원어치, 삼성생명을 1148억원어치, 한국전력을 869억원어치, KB금융을 508억원어치 사들였다.
이들 종목에 기관 매수세가 집중된 건 지난 24일 정부 밸류업 정책 발표 영향이다. 기관투자자들은 정책 발표 후 해당 종목들을 대거 매수했지만 이전에는 오히려 이를 팔기 바빴다.
앞서 지난달 1일부터 23일까지 16거래일 동안 삼성물산을 1822억원어치, 삼성생명을 1800억원어치 팔아치웠다. 또한 현대차를 1475억원어치, 신한지주를 560억원, LG 425억원어치, SK 499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정부 밸류업 정책 발표 이전과 이후 기관투자자의 수급 변화는 기술성장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저PBR 종목을 사들인 반면 국내 대표 기술주를 적극적으로 내다 팔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13일까지 기관투자자는 삼성전자(4238억원)와 SK하이닉스(2221억원)를 대거 팔아치웠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6429억원, 3398억원어치 순매수한 외국인 투자자 행보와는 대조된다.
이밖에도 기관은 국내 증시를 대표하는 정보기술(IT)주인 네이버(2603억원)와 바이오 대장주인 삼성바이오로직스(570억원) 등을 대거 팔아치웠다.
일각에선 기관의 매수 행보에 대해 기술성장주 위주의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는 해외 증시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증시에선 주가수익비율(PER)이 높은 성장주가 주도주 지위를 지키고 있다.
정부가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하기도 전 저PBR 기업들의 주가가 이미 테마성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도 우려 대목이다.
기관투자자들이 대거 사들인 KB금융(35.6%), 현대차(34.7%), 삼성생명(33.9%), 삼성물산(32.8%) 등은 지난 24일부터 이달 13일까지 30% 넘게 급등했다.
저PBR주로 꼽히는 흥국화재는 지난 13일 호실적 소식에 상한가를 기록했다. 지난해 내내 2000원대 후반~3000원대 초반을 횡보하던 흥국화재는 정부 정책 발표 이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80% 넘게 주가가 치솟았다.
주가 움직임이 무거운 저PBR주가 단기간에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다만 과거에도 한국판 뉴딜정책 수혜주(문재인 정부), 남북 경협 수혜주(박근혜 정부) 등 단기간에 오른 정부 정책 수혜 종목 대부분은 추후 주가가 제자리를 찾아간 바 있어 최근 저PBR주의 단기 급등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증권사 한 PB는 "기관이 기술주를 던지고 저PBR주로 이동하며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일반적으로 저PBR주는 성장 모멘텀을 발견하기 어려운 주식이다. 자칫 개인투자자들이 섣불리 추격 매수하면 장기간 물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 투자자들은 수년간 가치주를 패대기치더니 이번에는 저PBR 주식을 마치 초전도체 테마주처럼 매수하는 모습"이라면서 "저PBR 종목에 투자하더라도 실제 정책 개선의 수혜를 받아 주주환원이 확대되고 지배구조 개선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여지가 있는지, 개선될 여지가 없는데 단지 밸류에이션 숫자가 낮아서 올랐을 뿐인지 판단하고 투자해야 할 수준까지 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