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하이닉스반도체 거친 역사SK그룹 품에서 13년… HBM으로 결실글로벌 빅테크 러브콜… 미국 진출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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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전자 메인 메모리용 DDR SD램 모듈 제품 이미지 ⓒSK하이닉스 뉴스룸
삼성전자와 함께 한국 반도체 역사를 이끌어오던 SK하이닉스가 AI(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초일류 기업으로 올라서는 새 역사를 만들고 있다. 경영 위기로 매각에 매각을 거쳐 SK그룹 품에 안긴지 13년차를 맞는 올해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만년 2위 꼬리표를 떼고 미래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을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를 굳힐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전자에서 이어진 42년 반도체 역사… SK그룹 편입 후 '날개'SK하이닉스는 지난 1983년 반도체 사업을 시작해 올해 42주년을 맞는다. SK하이닉스 역사는 과거 현대그룹 소속이던 현대전자로, 이후 LG반도체를 인수해 몸집을 키웠지만 부채 부담이 커지면서 경영이 악화됐고 결국 채권단에 매각되며 워크아웃에 돌입했다.이 과정에서 사명이 오늘날 SK하이닉스의 전신이 된 '하이닉스'로 변경됐다. 현대전자에서 반도체 사업만 남겨 새 출발을 선언했지만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이어지며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력을 높이며 글로벌 1위로 자리하는 모습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이후 삼성처럼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만 집중하는 사업 구도를 짰지만 지난 2003년, 극심한 자금난이 다시 닥치면서 또 한번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 위기에 하이닉스는 연구개발(R&D)에 오히려 파격적으로 투자하는 차별화 전략에 나서면서 경영 정상화는 물론이고 글로벌 반도체업계와 기술과학계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경영 악화와 잇따른 구조조정, 사업 매각 등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다시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나 싶었지만 메모리 반도체 특성 상 업사이클과 다운사이클이 반복되는 업황은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하이닉스에겐 여전히 버거웠다. 결국 지난 2012년 SK그룹을 새로운 모기업으로 맞아 새출발에 나선 하이닉스는 사명을 'SK하이닉스'로 바꾸고 도약을 다시 꿈꿨다. -
- ▲ 2003년 7월 하이닉스반도체 초고속 DDR500 세계 최초 출시 ⓒSK하이닉스 뉴스룸
SK하이닉스는 올해 SK그룹에 편입된 지 13주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SK그룹에 인수되던 당시 기업가치가 3조 9000억 원에 불과했던 SK하이닉스는 이후 10년 만인 지난 2022년 기준 시가총액 100조 원 기업으로 성장했다. 인수 첫 해 2300억 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내던 회사는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며 매출 66조 1930억 원, 영업이익 23조 4673억 원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지난해엔 메모리 시장 30년 1위인 삼성전자 반도체(DS) 사업부문의 실적을 넘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 최대 실적 기록을 쓴 기업으로 처음 이름을 올릴 것으로도 기대된다. -
- ▲ 2023년 용인반도체클러스터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최태원 SK회장(오른쪽)과 박정호 전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SK하이닉스 뉴스룸
◇ 15년 넘게 이어온 HBM 기술개발… 글로벌 1위 꿈 이룬 '필연'메모리 시장 만년 2위일 것만 같았던 SK하이닉스가 그야말로 환골탈태에 성공한 비결로는 단연 'HBM(고대역폭메모리)'이 꼽힌다. HBM은 AI 반도체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고성능 메모리로, 과거 니치마켓으로 치부되던 분야를 SK하이닉스가 꾸준히 기술 연구와 상품 개발을 이어오면서 이제는 독보적인 선두주자로 자리매김 했다.HBM이 두각되기 전까진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30% 초반 수준에 머물렀다. 삼성전자가 시장의 거의 절반을 점하고 그 뒤를 SK하이닉스가, 나머지 20% 가량을 미국 마이크론이 차지하는 4대 3대 2 구도를 수십년째 이어왔다.D램과 낸드 플래시 일부 제품에선 삼성과 SK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기술력 경쟁을 벌여왔지만 삼성이 압도적인 생산능력(CAPA)과 마케팅, 이익률을 자랑하며 SK하이닉스와 격차를 유지해왔다.인재 경쟁에서도 SK하이닉스가 후순위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이 30년 넘게 메모리 시장 1위로 글로벌 곳곳에서 반도체 인재들을 흡수하고 경쟁사인 SK하이닉스 인재들도 삼성으로 넘어가는 케이스가 많아 골치를 앓기도 했다. -
- ▲ SK하이닉스 HBM 개발 역사 ⓒSK하이닉스 뉴스룸
분위기 반전은 지난해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2022년 생성형 AI가 등장한 이후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AI를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고 글로벌 IT 산업 투자가 AI로 집중됐다. 메모리 분야에서도 막대하게 늘어난 데이터를 처리하고 빠른 학습, 추론을 지원하기 위해서 과거 대비 훨씬 더 용량이 크고 성능이 우수한 제품이 시급해졌다.이런 흐름 가운데 이미 HBM과 같은 고성능 메모리 개발을 이어오고 신제품도 꾸준히 출시하고 있던 SK하이닉스는 기회를 잡았다. HBM이라는 제품 자체를 세상에 처음 선보인게 SK하이닉스였고 이후 3세대(HBM2E), 4세대(HBM3)까지 '세계 최초' 개발 타이틀을 거머 쥔 곳은 SK하이닉스였다. 삼성이 2세대(HBM2) 최초 개발에 나서면서 추격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기술 주도권은 이어졌다.AI 반도체가 새로운 시장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자마자 SK하이닉스는 단숨에 HBM 시장점유율 절반을 확보한 1인자로 자리잡았다. 이듬해인 지난 2023년 업계 최고 성능을 갖춘 5세대 HBM인 'HBM3E' 개발에 성공하면서 오늘날 HBM 성공신화가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다.무엇보다 AI 반도체 시장 최강자인 미국 엔비디아에 HBM3E 제품을 최초 단독 공급하게 되면서 기술력을 확실히 인정받았다. 8단 제품 공급을 확정지은데 이어 조만간 16단 제품의 공급 문도 열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엔비디아에 이어 글로벌 빅테크들도 SK하이닉스의 HBM을 공급받기 위해 줄을 서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
- ▲ CES 2025에 전시된 SK하이닉스 HBM3E 16단 제품 및 구조 모형 ⓒSK하이닉스
◇ "진짜 성장은 이제부터"… 'HBM4' 승부수메모리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뛰면서도 사업분할과 매각, 합병 등 굵직한 위기들을 온 몸으로 버텼던 SK하이닉스의 진가는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AI 붐이라는 시대 흐름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지난 15년 넘게 SK하이닉스가 불모지였던 고성능 메모리 분야에 연구개발을 이어온 결과가 현재 전성기의 불씨가 됐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올해 승부처는 6세대 HBM인 'HBM4'가 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이미 HBM4 개발에 한창이고 올 하반기 중에는 개발과 양산 준비를 마치고 고객사에 공급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자사 AI 가속기 신제품 출시 주기를 6개월 가량 앞당긴 타임라인에 맞게 HBM 1위 SK하이닉스도 예년 대비 한 발 더 빨라진 개발 속도로 또 한 번 업계 최초 기록을 세울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지난해 전격 투자를 결정한 미국 어드밴드스 패티징 공장 및 연구개발 시설도 올해 본격적인 실행에 들어가면서 미국 생산시대를 여는 중요한 첫 발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지역에 새로운 생산기지를 건설해 차세대 HBM을 비롯한 AI 메모리 주요 제품을 이 곳에서 집중 생산한다는 계획이다.AI 반도체 시장에서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주문형 반도체(ASIC) 분야에서 SK하이닉스의 활약도 예고된다. AI 반도체 수요가 엔비디아 일변도가 아닌 다양한 수요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SK하이닉스가 HBM을 기반으로 도약에 나선 데 이어 퀀텀점프까지 가능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