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검사 항소 기각… 무죄 판결 유지“거짓 회계·합병보고서 조작 보기 어려워”경영 행보 확대 하며 위기 돌파 나설 듯등기이사 복귀·컨트롤 타워 재건 등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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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년간 이어진 사법 족쇄를 끊으면서 ‘뉴(NEW) 삼성’ 구현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3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최종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삼성의 본원적 경쟁력 회복을 위한 행보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이날 이재용 회장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등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2월 5일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 1년 만이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항소를 기각해 원심 무죄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회계처리는 거짓회계라 보기 어렵다”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보고서도 조작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사내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앞서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 1심은 이 회장의 19개 혐의 전부를 무죄로 판단하며 이 회장을 비롯해 재판에 넘겨진 삼성 임원진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두 회사의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만을 위한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고,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그러나 검찰은 불복해 즉각 항소를 진행, 그해 11월 결심 공판에서도 원심과 같은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기 위해 서울행정법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일부 분식회계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8월 판결을 반영해 공소장을 변경하기도 했다.이날 이 회장은 무죄 판결 후 소감을 묻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지나갔다. 다만 이 회장의 변호인단은 “정말 긴 시간이 지났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제는 피고인이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등기이사 복귀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는 “저희 변호인이 말씀드릴 수 있는 사항은 아닌 것 같다”고 짤막하게 답했다.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이 회장은 경영 행보를 확대하며 그룹의 위기돌파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삼성전자는 지난해 나쁘지 않은 연간 실적에도 불구하고 주력인 반도체 사업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연결기준 삼성전자는 연간 매출액 300조9000억원, 영업이익 32조7000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매출액은 16.2% 증가해 2022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달성했으며, 영업이익은 398.3% 늘었다.그러나 주력인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매출 30조1000억원, 영업이익 2조9000억원에 그쳤다. 작년 4분기 SK하이닉스 영업이익 8조828억의 절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모바일과 PC용 수요 약세가 지속된 가운데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고용량 DDR5 판매 확대로 D램 평균판매단가(ASP)는 올랐지만 연구개발비와 첨단 공정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초기 램프업 비용이 증가하며 영업익은 감소했다.반도체 뿐만 아니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모바일 경험(MX)또한 플래그십 신모델 출시 효과 감소 등으로 판매가 줄며 전분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TV와 가전 사업은 업체 간 경쟁 심화로 전분기 대비 수익성이 약화했다.급변하는 지경학적 요인 외에도 10년 가량 이어진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 영향이 컸다. 이 회장은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560일 가량 구속수감된 것을 시작으로 10년 간 법정을 오가느라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2020년부터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시세조정 혐의로 100차례가 넘도록 재판에 출석했다.그러다보니 경영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없었고, 대형 인수합변(M&A) 등 신성장동력 찾기도 수년째 지연됐다. 대규모 투자에는 총수의 과감한 판단이 필요한데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로 발이 묶이며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재계에서는 다음 달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재용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할지 주목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19년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뒤 미등기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미등기임원은 이재용 회장이 유일하다. 미등기임원은 주주총회를 통해 선임되지 않아 법인등기부등본에 등재되지 않은 임원을 뜻한다.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할 경우 이사회 구성원으로 책임경영에 나설 수 있어 보다 적극적인 경영 활동이 가능해진다. 또한 주주들에게 책임경영에 대한 명확한 신호를 줌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이 10년간 법정에 선 기간은 해외출장보다도 훨씬 많았다. 대기업 총수 가운데 가장 긴 시간 법정을 드나들었다”면서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털어낸 만큼 그룹 컨트롤타워 재건, 초격차 전략 재가동 등 그룹 위기 상황 돌파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