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S&P500 ETF, 최저보수 닷새 만에 52%↓중소형사 한숨…ETF 시장 성장세 둔화 우려도이복현 “질적 성장 결여된 채 혼탁해지지 않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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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순자산 185조원을 넘기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자산운용사 간 총보수 인하 경쟁도 날이 갈수록 심화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제 살 깎기’ 식 경쟁 환경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중소형사 입지 위축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금융당국도 ‘승자 없는 치킨 게임’이 될까 예의주시하고 있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자산운용은 지난 11일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를 추종하는 ‘RISE 미국 S&P500’과 ‘RISE 미국 S&P500(H)’의 총보수를 기존 연 0.01%에서 연 0.0047%로 약 53% 인하했다. 나스닥100 지수를 따르는 ‘RISE 미국 나스닥100’도 연 0.01%에서 연 0.0062%로 약 38% 내렸다. KB자산운용은 해당 ETF 3종의 운용보수가 0.0001%로 사실상 ‘제로(0)’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KB자산운용은 지난해 7월 ETF 브랜드명을 ‘KBSTAR’에서 ‘RISE’로 변경하며 13개 상품에 대한 총보수를 연 0.01%로 낮춘 바 있다. 자사 핵심 상품들의 총보수를 약 반년 사이 두 번이나 인하한 것이다.

    최근의 자산운용사 간 보수 인하 경쟁은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시작됐다. 지난 6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 미국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의 총보수를 연 0.07%에서 0.0068%로 내렸다. 해당 상품들의 운용보수는 0.05%에서 0.0002%까지 낮춰졌다.

    삼성자산운용도 다음날인 7일 ‘KODEX 미국S&P500’, ‘KODEX 미국나스닥100’에 대한 총보수를 연 0.0099%에서 0.0062%로 인하하며 맞불을 놨다. 이에 미국 S&P500 ETF의 최저보수는 기존 연 0.0099%에서 닷새 만에 절반 수준인 0.0047%로 0.0052%포인트 낮아졌다.

    이처럼 자산운용사들이 경쟁적으로 수수료를 낮추게 된 것은 지난 수년 동안 가파르게 성장한 ‘미래 먹거리’인 국내 ETF 시장의 점유율을 흡수하기 위함이다. 특히 1·2위인 삼성·미래에셋자산운용, 3·4위 KB·한국투자신탁운용의 점유율 격차가 줄어들면서 출혈경쟁으로 번졌다.

    국내 ETF 시장 순자산총액은 12일 기준 186조2121억원으로 전년(2024년 2월 13일) 129조2239억원보다 44.10%나 늘었다. 이 가운데, 업계 1위인 삼성자산운용의 순자산총액은 70조7987억원, 2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66조2675억원으로 집계됐다. 시장 점유율은 각각 38.02%, 35.59%로 2.43%포인트 차이다. 전년(40.21%·37.20%) 3.01%포인트에서 0.58%포인트 줄어든 수준이다.

    3·4위 경쟁도 치열하다. 현재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시장 점유율은 7.87%(14조6562억원)로 KB자산운용(14조4169억원·7.74%)을 근소하게(2394억원·0.13%포인트) 앞지르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두 운용사의 점유율은 5.10%(6조5903억원), 7.70%(9조9462억원)로 KB자산운용이 2.6%포인트 앞섰지만, 지난해 12월 27일 처음으로 순위가 바뀐 이후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상위 운용사들의 점유율 쟁탈전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고 규모가 작은 중소형사 경우 보수 인하 시 매출 타격으로 직결된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투자자 유치가 어려워져 ETF 시장에 설 자리도 사라질 수 있다. 또한 차별화된 상품을 활용한 경쟁이 아닌 보수 인하 경쟁은 향후 전체 ETF 시장의 성장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인지도가 높고 자금 여력이 충분한 대형사 입장에서는 보수 인하가 점유율 확보에 가장 쉽고 빠른 길이겠지만, 중소형사들은 경쟁에 참전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중장기적 측면에서 ETF 시장·상품의 질이 떨어져 투자자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운용업계의 ‘치킨 게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8월 23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와 간담회를 열었다. 당시 이 원장은 CEO들을 향해 “최근 공모 펀드 시장이 ETF 중심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경쟁 과열로 인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면서 “ETF가 투자자에게 신뢰받는 건전한 투자수단이 될 수 있도록 운용사의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해달라”며 자산운용 산업의 건전한 성장을 도모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원장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증시 활성화를 위한 열린 토론회’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단기적으로 과다한, 상대방의 조치에 대응하는 형태의 경쟁은 소비자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며 “소비자 비용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질적 성장을 간과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단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과당 경쟁 우려가 있어 보이는 운용사들과 면담했었다”며 “가격 경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지만, 질적 성장이 결여된 채 시장이 혼탁해지지 않도록 업계와 소통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