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1000억 투자 발표 … 통 큰 배팅인텔, 신공장 미루는 틈 타 투자 결정벼랑 끝 삼성·SK, 추가 투자 현실성 타진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웨이저자(C.C. 웨이) 대만 TSMC 회장이 3일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웨이저자(C.C. 웨이) 대만 TSMC 회장이 3일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미국에 1000억 달러(약 146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새롭게 밝히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또 한번 대미(對美) 투자 압박을 받게 됐다.

    TSMC는 기술적 이유 외에도 지정학적, 안보적 이유로 미국 투자를 감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투자만으로도 버거운데다 실효성도 담보되지 않아 고민이 깊다.

    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TSMC가 미국에서 1000억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이미 대미 투자에 나선 기업들이 이 같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대만과 한국의 대미투자 명분이나 규모, 배경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는 상태지만 TSMC를 시작으로 미국 트럼프 정부가 나머지 외국 기업들에게도 추가 투자를 종용할 가능성도 높아 안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를 두고는 당장 TSMC가 실익 보다는 안보와 지정학적 이유에 무게를 뒀다는 평이 우세하다. 미국 인건비와 물류비가 비싸 자국인 대만보다 반도체 생산 비용이 훨씬 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지 오래인 TSMC가 이런 점을 감안하고도 대미 추가 투자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데는 그만큼 안보 논리가 우선했다는 해석이다.

    TSMC가 미국 추가 투자에 나설 수 있었던 명분은 또 있다. 오픈AI를 시작으로 글로벌 AI 패권이 미국기업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TSMC의 주요 고객사들이 미국에 더 집중되는 현상이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AI 칩 시장 대부분을 차지한 엔비디아와 호흡을 맞춰 온지 오래인 TSMC는 엔비디아 외에도 자체 AI 칩을 설계해 생산에 나서고 있는 유수의 빅테크 기업들을 고객사로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TSMC가 고객사들과 근거리에 생산공장을 확충한다면 AI 파운드리 주도권을 이어가기 훨씬 유리한 상황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글로벌 3위 파운드리를 꿈꾸던 인텔은 자국에 투자하는 전략에서도 한 발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 대조적이다. 인텔은 최근 오하이오 지역에 신설하는 1공장이 2030년에나 완공되고 가동은 이듬해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계획을 수정했다. 2공장의 경우 완공이 2031년, 가동은 2032년에나 시작된다.

    이는 당초 계획 대비 5~7년은 늦어지는 셈이다. 이처럼 인텔이 사업 위기로 신공장 건설을 위해 자금을 안정적으로 댈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 가동 시점을 두번이나 연기하고 나서면서 맥을 추지 못하자 트럼프 정부도 TSMC 생산공장을 자국 내에 더 유치하는 방법으로 반도체 생산기지 확보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 ▲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테일러 신공장 건설 현장 모습 ⓒ삼성전자
    ▲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테일러 신공장 건설 현장 모습 ⓒ삼성전자
    하지만 삼성과 SK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이들 기업들과는 사정이 또 다르다. TSMC처럼 안보 이슈가 얽혀 무조건 투자에 나설 필요도 없지만 인텔처럼 경영위기 상황에 놓여 대미 투자 권유에 완강히 맞설 명분도 없다. 이미 삼성은 미국 반도체 생산 거점을 짓는데 370억 달러(약 54조 원) 이상을 투자키로 했고 SK하이닉스도 38억 7000만 달러(약 5조 6000억 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이 중 건설을 진행 중인 삼성은 내년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지만 이마저도 삼성 파운드리의 고객사 확보 상황이나 기존 공장 가동률 등을 고려할 때 무리한 일정이 될 수 있다는 평이 나온다. 삼성 파운드리가 AI 투자 수요를 계기로 더 압도적으로 고객사를 확보하고 나선 TSMC에 밀리면서 신규 공장을 가동보다 주문을 먼저 확보하는게 급선무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전 정권인 바이든 정부 시절 확보해 놓은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에 변화가 생긴다면 현재 계획대로 공장을 가동하는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삼성에겐 그만큼 미국 투자가 빠듯하게 돌아가는 상황이고 실효성 측면에선 이미 상당부분을 내려놨다고 할 정도로 무리한 투자라는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다만 TSMC가 미국 내에서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미국 고객사들과의 접점을 대폭 늘리는 것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은 제기된다. 현재도 삼성 파운드리가 미국 주요 고객사들을 유치하는데 최우선 목표를 두고 북미 영업통인 한진만 사장을 사업부장으로 두고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추가 투자 명분이 남아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TSMC의 대미 추가 투자 발표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무차별 관세를 실행에 옮기고 있어 앞으로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서 삼성과 SK도 전략을 달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반도체에 매겨지는 관세 등이 특정되지 않았지만 이 같은 정책이 실현됐을 경우 삼성과 SK의 셈법은 또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