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제도 공백 … 한국형 모델 구축 '골든타임''100% 준비금·자금세탁방지·외환통제' 3대 과제 부상CBDC+민간코인 결합한 혼합 네트워크 설계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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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대신 코인’이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법정화폐와 1대1로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은 연 3~6%에 달하는 고금리와 간편한 사용성을 무기로 전통 금융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은 인가제와 100% 준비금 규제로 제도화에 속도를 내는 반면, 한국은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간 주도권 다툼 속에 제도 정비가 뒷전으로 밀려 있다. 계좌 대신 디지털 지갑, 예금 대신 코인을 선택하는 시대. 국부 유출과 금융 주권 훼손을 막기 위한 한국형 제도화 전략이 시급하다. 스테이블 코인의 위협과 기회, 글로벌 규제 흐름, 그리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과제를 짚어본다.[편집자주]

    글로벌 디지털 결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은행 예금보다 높은 이자율(연 3~6%)과 계좌 없이도 가능한 간편한 사용성을 앞세운 스테이블코인은 통제 불가능한 외국계 발행 코인이 국내 거래소 자금의 상당량을 점유하는 등 전통 금융의 근간을 흔드는 존재로 부상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하려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금융주권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송금·자산 보관 등 전자화폐와 다름없는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동일 기능-동일 규제 원칙에 따라 전자금융업 수준의 규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전문가들은 제도화의 3대 핵심 과제로 ▲100% 준비금 확보 ▲AML(자금세탁방지) 체계 구축 ▲외환관리법과의 정합성 확보를 꼽았다. 

    ◇1대 1 준비금 없으면 통화대체·시장불안 불가피 … 외환법 정비해야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법정화폐와 1대 1 비율로 교환되려면 발행자가 해당 금액을 100% 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현금 없이 발행된다면, 대규모 환급 요구 시 디페깅(고정 비율 붕괴)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때문에 준비금의 종류와 공시, 외부감사까지 의무화하는 유럽 MiCA(암호자산시장 규제법)와 유사한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화 스테이블코인 VS 달러 스테이블코인: 글로벌 통화전쟁 승리 전략’ 정책토론회에서 “외국환거래법을 개정해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정의를 명확화하고, 사전 등록 및 거래 내역 보고를 의무화하고, 정보 공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발행인은 일본처럼 은행·신탁업자·자금이체업자(단, 고객자산 분리 요건 충족) 등으로 제한하되, 이용자 보호를 위한 1대 1 준비자산·검증 시스템·상환 의무 등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섭 서울대 교수는 “단일 담보나 만기 불일치 구조는 MMF런(대규모 상환 사태)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담보 다변화, 디지털판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NSFR(순안정자금조달비율) 도입, 유동성 백스톱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해외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유입도 주요 쟁점이다. 테더(USDT) 등 달러 기반 코인은 국내 암호화폐 시장에서 광범위하게 거래되고 있으며, 이는 원화 통화주권 약화와 외환 정책 무력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윤민섭 디지털소비자연구원 이사는 “외국환거래법 개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정의하고, 사전 등록제·보고 의무를 명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가세 … “국부 유출 막자” vs “시장 자율 보장”

    정치권도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쟁에 뛰어들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육성해 해외 거래소로의 자금 유출을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금융위원회에 발행 인가권을 부여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초안을 준비 중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과도한 인가제는 기술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며 시장 자율성과 혁신 보장을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국 규제를 단순 모방할 것이 아니라,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제도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발행 주체도 은행뿐 아니라 핀테크·IT기업까지 포함해 민간의 혁신성과 확장성을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종섭 서울대 교수는 “CBDC(중앙은행디지털화폐)의 안정성과 스테이블코인의 확장성을 병행하는 블록체인 금융 네트워크 설계가 시급하다”며 “준비금 품질 기준, 디지털 유동성 백스톱 협약 등을 통해 글로벌 MMF런(자금이탈 사태)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민섭 디지털소비자연구원 이사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과 외국환거래법 개정을 병행하고,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경우 금융혁신지원법상 혁신금융서비스로 시범 발행할 수 있는 규제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