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선심용 득표 정책 … 민간기관·소비자는 '악순환' 고리새출발기금 신청자 지난달 12.5만명 … 채무액 20조원 돌파"빚 탕감 공약, 신뢰가 자본인 금융시장 질서 위협"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뉴데일리DB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뉴데일리DB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금융권에선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정치권의 '선심성 빚 공약'을 우려하고 있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표심을 겨냥한 채무 조정 또는 빚 탕감 공약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 심화, 성실 채무자에 대한 역차별 가능성은 물론, 금융사의 부담이 증가하면 소비자에 대한 상환리스크 전가 등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어 경고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김문수 "채무조정 등 금융지원" … 이재명 "빚 탕감"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유력주자들은 대선을 앞두고 저마다 소상공인 또는 취약차주들의 채무 관련 선심성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소상공인 관련 공약으로 정책자금 확대 등 '특별 융자'에 방점을 찍었다. 김 후보는 최근 토론회에서 김 후보는 "소비 진작을 위해 확실하게 많은 지원을 하고 소상공인은 채무를 조정하고 금융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매출액이 급감한 소상공인에 대해 생계방패 특별융자, 경영안정자금 지원 확대, 새출발 희망 프로젝트 지원금 확대 등 '소상공인 응급 지원 3대 패키지'를 구상했다.

    소상공인 채무 조정 및 금융부담 완화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 역할을 확대하고, 지역신용보증재단 및 소상공인진흥공단을 통해 연간 30조원(보증 20조원·자금 10조원) 규모의 자금을 공급, 소상공인의 금융 부담을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한층 더 노골적인 '빚 탕감'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토론회에서 "채무 조정을 넘어 정책자금은 상당 부분 탕감이 필요하지 않느냐"면서 "불경기에는 정부가 조정 역할을 해야 한다"고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의지를 드러냈다.

    이 후보는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피해 소상공인 지원 및 경영 부담 완화 등을 비롯해 코로나 19 정책자금 대출에 대해선 채무조정 또는 빚 탕감을 제시했다. 또한 저금리 대환대출과 이차보전 등 정책자금을 확대하고 소상공인 맞춤형 장기분할상환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의 지원책을 내걸었다.

    지원 대상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범위를 2020년 코로나 팬데믹부터 지난해 말 비상계엄까지 잡으면 550만 자영업자가 사실상 모두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분석이 따른다.

    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따르면 새출발기금 신청자는 지난달 기준 12만5738명으로, 채무액은 20조3173억원에 달한다. 이 후보가 내건 채무 탕감 공약이 실현된다면 20조원 이상의 지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득표 위한 선심성 공약 … 금융사·소비자에겐 '그림자'

    이처럼 채무를 조정하거나 없애주겠다는 대선판의 공약을 바라보는 금융권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정치권의 '빚 탕감' 구호가 성실한 채무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부를 수 있고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또한 정치권의 선심성 지원책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NICE평가정보에 따르면 정책자금을 이용하는 자영업자는 2019년 말 2.2%에서 올해 2월 19.7%로 급증했다. 이로 인해 잠재적 부실률도 증가하고 있으며, 정책금융이 도리어 자영업 시장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등 시장 왜곡을 초래한다 분석이 나온다.

    한 금융사 종사자는 "빚 탕감 같은 공약은 성실하게 빚을 갚는 채무자들만 바보 만드는 꼴"이라며 "표를 얻기 위한 정치권의 무책임한 공약이 신뢰가 자본인 금융시장을 왜곡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빠르게 새로운 기회를 자구할 수도 있는 자영업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코로나 지원 등 명목으로 연명하다 부실 문제가 심화하면 또 다시 정책지원을 요구하는 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탕감 주장이 도리어 금융소비자들의 이익을 악화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채무자들 사이에서 '빚을 갚지 않아도 나라가 다 갚아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금융사로서는 일반 대출에서도 상환리스크를 소비자에게 더 전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민간 기관에서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부실 문제가 발생하면 일반 정상 차주 또는 일반 예금자들에 대해 가격 전가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이어 "성실 차주에 대한 역차별과 형평성 문제, 도덕적 해이 유발 가능성은 물론이고 정부가 대리 채권 형태로 계속 갚아주게 되면 정부 재정도 적자가 되고 부실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