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분 71.69%지만 사기업 … '월권' 지적산은·해진공 HMM 민영화 계획 어그러질 수도투자계획 차질, 인력 이탈 등 경쟁력 약화 우려스튜어드십 코드 부작용 재현? … 불안감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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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HMM 본사의 부산 이전에 대한 의지를 연일 재확인하며 산업계에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이 후보는 정부의 HMM 지분을 활용하면 부산 이전이 충분하다는 생각이지만, 이는 기업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로 이재명 정부 탄생 시엔 스튜어드십코드 부작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전날 진행된 대선후보 마지막 TV 토론회에서 “북극항로 개발로 부산은 해운항만의 중심 도시가 될 것으로, 해운물류 회사를 부산으로 집중해야 한다”면서 “HMM은 반드시 부산에 가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HMM 전신이 어떤 회사냐’ 물었는데, 대뜸 HMM의 부산 이전 취지를 설명하고 나선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앞서 지난 14일 부산 유세에서 HMM 본사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HMM에 대한 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 지분 71.69%와 국민연금 지분 6.02% 등 77.71%의 지분을 활용하면 HMM의 부산 이전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법적·경영적 논란은 물론 민영화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곳곳에서 우려가 제기됐다.

    업황 어려운데 HMM 콕 집어 혼란 부추겨

    업계에서는 우선 HMM 본사 부산 이전이 대주주의 민영화 의지와 전면적으로 대치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산은과 해진공은 HMM 보유 지분을 조속히 매각해 민영화하는 방안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 후보의 공약 현실화를 위해선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 후보의 발언 이후 HMM이 ‘정치 테마주’로 묶이며 주가가 급등한 점도 지분 매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제 연초 16조원대였던 HMM의 시가총액은 현재 22조원을 웃돌며 몸집이 더욱 커졌다. HMM 주가가 오르면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떨어지는 구조로, 산은의 경영 안정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미 HMM 매각 지연으로 국내 해운산업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18년 763만830t이던 한국 선박 발주량은 지난해 133만1340t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세계 선박 발주량이 6533만730t에서 1억3396만t으로 2배가량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정반대다.
  • ▲ 이재명 대선후보. ⓒ뉴데일리
    ▲ 이재명 대선후보. ⓒ뉴데일리
    전 세계 발주량 가운데 한국 선주 발주량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11.7%에서 1%로 쪼그라들었다. 국내 최대 선사인 HMM이 민영화 이슈로 선박 발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고 주요 해운사들이 2010년대 초중반 사모펀드운용사(PEF)에 매각, 투자에 소극적인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가운데 HMM의 부산 이전이 현실화하는 경우 HMM의 글로벌 해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해운업계가 주요 얼라이언스 재편으로 큰 변화를 맞은 가운데서 본사 이전과 조직 재정비 등 혼란으로 경영 대처 능력이 둔화하고, 얼라이언스 재편 경쟁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노골적인 정부 간섭 예고 … 기업들 불안 확산

    이 후보의 HMM 부산 이전 공약은 다른 산업군의 기업 경영에도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HMM은 정부 지분이 높지만 엄연한 민간기업으로, 정치권의 강제 이전 시도는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로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는 경우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빈번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HMM이 해운항만 도시인 부산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편향적인 논리”라면서 “서울 여의도는 글로벌 고객 및 해운동맹과의 협업에 최적화된 환경이다. 고객사들이 인접했고 인천공항 접근성도 강점인 반면 부산은 물류비 증가와 업무 효율성 저하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다른 산업계 관계자는 “이 후보가 북극항만 개발을 명분으로 HMM의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직원 동의나 사전 논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역 표심을 잡기 위해 섣불리 공약을 발표해 논란만 키우고 있다”며 “이 후보의 ‘정부가 밀어붙이면 다 된다’는 식의 주장은 다른 기업들에게도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의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으로, 2018년 국민연금에 처음 도입됐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 개혁’과 ‘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이를 적극 활용,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HMM의 민영화를 위해 ‘좋은 주인 찾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을 밝힌 산은과 해진공의 움직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산은과 해진공은 이 후보의 발언이 논란이 된 이후 “HMM 본사 이전은 경영 판단 사항이며, 기관 차원에서 검토한 바 없다”고 명확히 밝혔지만, 강석훈 산은 회장의 임기가 오는 6월 6일 만료여서 HMM 민영화도 표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