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박물관, 몰입과 수집의 미학 따라가는 특별전 '벽치광작(癖痴狂作)' 선뵌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은 수집의 기원과 컬렉션의 원류를 조명하는 제44회 특별기획전 '벽치광작(癖痴狂作)-수집과 컬렉션'을 연다고 10일 밝혔다.

전시는 오는 12일부터 내년 3월 말까지 성균관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기획전은 '좋아하는 일에 미치도록 몰입한 사람들'의 기록과 흔적을 따라한다. 조선 후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취미, 수집, 창작의 에너지를 박물관적 시선으로 풀어낸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화가 단절될 위기 속에서 서예가이자 서화 감식가로 이름을 알렸던 위창(葦滄) 오세창은 '근역서화징'을 비롯해 '근역서휘', '근역화휘', '근역석묵', '근묵' 등을 편찬해 조선 서화사를 체계화했다. 이 작업의 기초가 된 것이 서화 수장가였던 아버지 역매(亦梅) 오경석이 남긴 수집과 정리의 기록이며, 그 실체는 '천죽재차록(天竹齋箚錄)'에 담겼다. 이번 전시에선 천죽재차록이 최초로 공개된다.

오경석은 역관 가문 출신으로, 1853~1875년 총 13차례 연행에 참여하며 조선과 중국의 서화를 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기록으로 남겼다. 천죽재차록에는 서화 감식과 필적 분석, 고증학자의 견해는 물론 고려·조선 서화에 대한 문화적 자부심, 추사 김정희와 실학자 박제가에 대한 비판적 시선, 사적 탁본 경위까지 상세히 담겨 있다. 근역서화징에 실리지 않은 오경석의 개인적 사유와 분석은 위창이 생략했던 '보다 솔직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가령 추사체에 대해 경솔하다거나 박제가의 사람됨이 저속하다 등의 평가가 나온다.

이번 전시에선 조선의 대표적 몰입가들도 만나볼 수 있다. 정조가 인정한 천재이자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 불렀던 이덕무는 평생 2만여 권의 책을 읽고, 규장각에서 각종 도서를 정리하며 총 67권 31책을 저술했다. 조선 중기의 김득신은 하루 12시간씩 독서에 몰입하며 '사기' '백이전'을 11만3000번 읽었고, 36편의 책을 1만~2만 회씩 반복해 읽은 독서광이었다. 이들의 삶은 오늘날 '덕후', '파고들기', '수집광'이라는 단어에 담긴 몰입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전시의 마지막은 현대의 '호작(好作)' 개념으로 확장된다. 호작은 생존이나 생산성과는 무관하게 '좋아서 만드는' 창작 행위다. 직업과 관계없이 밤새 바늘에 꿰고, 나무를 다듬고, 인형에 한복을 입히는 이들의 작업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새로운 미적 감각과 감동을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목활자와 이를 위한 도구, 전통 복식을 입은 인형 시리즈 '꼬레고마', 디즈니 베이비돌에 한복을 입힌 퓨전 작업, 남은 옷감으로 만든 바늘쌈지와 복식 소품 등 자발적 몰입이 빚어낸 다양한 창작물이 소개된다. 이들은 취향 기반의 창작이 하나의 문화로 확장되는 흐름을 상징한다.

김대식 관장은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파고드는 몰입의 태도야말로 가장 순수한 문화 창조의 출발점"이라며 "이번 '벽치광작(癖痴狂作)'은 수집과 몰입, 창작이라는 인간 고유의 행위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시대의 문화, 기억, 기록으로 진화해 온 과정을 풀어낸 전시"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경석, 오세창 부자의 수집과 정리벽은 문화 자립의 상징으로,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