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매각 소식에 소외된 개미들 부글부글재계는 긴장모드 … EB 발행 결정 철회 사례도"상법 개정=기업 경영 위축? … 예단하긴 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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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tGPT 생성.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일반 주주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반면 기업들은 의사결정 하나에도 법적 리스크를 의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업계에선 '주주 충실 의무' 위반 기업 1호 대상이 어디가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으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 여부를 따질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기존에는 이사의 충실 의무가 '회사'에만 한정돼 있었지만 '회사 및 주주'로 충실 의무대상이 확대됐다.상법 개정 이전에는 이사회의 결정이 회사를 위한 합리적 판단으로 보여질 경우 그 결과가 다소 좋지 않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나 상법 개정안이 공포 즉시 시행되면, 유상증자나 인적분할처럼 경영권 보호나 사업 효율화를 앞세운 결정에 대해서도 주주 이익을 침해했는지 여부를 따져볼 수 있게 된다. 주주가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될 경우, 이사에게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시장의 관심은 자연스레 '첫 적용 사례'로 옮겨가고 있다. 가장 먼저 주목받는 곳은 롯데렌탈이다.롯데렌탈은 지난 2월 2119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해당 물량은 사모펀드(PEF) 운용사 어피니티프라이빗에쿼티(이하 어피니티)가 받기로 했다.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유상증자 가격이다. 롯데그룹 측은 롯데렌탈 주식을 주당 7만7115원에 매각하기로 했는데, 당시 주가가 2만94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약 2.6배의 프리미엄이 반영된 가격이었다. 반면 유상증자 가액은 주당 2만9180원으로 당시 시세보다 낮게 책정됐다.이에 롯데렌탈 지분 약 4%를 보유하고 있는 행동주의펀드 VIP자산운용이 롯데그룹의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위한 '꼼수'이자 어피너티 측에만 유리한 결정이라며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반기를 들었다. 유상증자로 주식 수가 늘면 기존 주식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지분율 희석도 불가피하다며 유상증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소액주주도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소액주주 행동 플랫폼 액트에 따르면 롯데렌탈 소액주주연대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4일 롯데렌탈을 상대로 주주명부 열람·등사를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이들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일반 주주들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추가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코스닥 상장사 파마리서치도 '1호 대상' 물망에 올랐지만, 이날 인적분할 추진 계획 철회로 선회했다.파마리서치는 지난달 지주회사인 파마리서치홀딩스와 사업회사인 파마리서치로 쪼개는 인적 분할 계획을 발표했다. 파마리서치가 인적 분할이 될 경우 지주사인 파마리서치홀딩스의 주가 하락은 예견된 상황이다. 그간 자회사 분할 후 상장을 추진한 모회사 대부분이 중복상장에 따른 주가하락 사태를 겪었기 때문이다.파마리서치 소액주주들은 액트에 모여 목소리에 힘을 실기 시작했다. 이날까지 액트에 모인 소액주주들의 주식 수는 46만9959주로 전체 지분의 4.52%에 달했다.파마리서치는 철회 배경에 대해 "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우려,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 소통의 충분성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며 "이를 신중히 받아들여 이번 (인적 분할) 결정을 재검토했다"고 설명했다.주주들의 반발에 한 발 물러난 사례는 또 있다. 태광산업은 보유 중인 자사주 전량을 담보로 대규모 교환사채(EB)를 발행하려고 했지만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가처분 신청과 금융당국의 공시 정정 명령 등 압박에 절차 중단을 선언했다. EB는 약속한 조건이 충족되면 돈이 아닌 자사주로 바꿔주는 채권이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는 제3자에게 넘어가게 될 경우 의결권이 살아나는데, 의결권을 갖고 있는 주식 수가 늘면 기존 보통주의 가치 역시 희석되기 때문에 일반 주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태광산업 사례의 경우 상법 개정안 통과 전이었음에도 투자자들의 강력한 반발과 제도적 압박을 감안해 선제적으로 철회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태광산업과 같이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혀 경영 활동의 보폭이 제한적이게 되거나 주주들과의 갈등 및 소송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다만 시장에서는 상법 개정만으로 당장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되거나 실제 기업과 주주들 간 소송전으로 번질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이다.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상법 개정 위반과 관련한 시행령이나 패널티 관련 조항들이 어떻게 마련되는지가 핵심"이라며 "디테일을 어떻게 잘 설계하느냐가 중요하다. 배임죄 요건이 완화되거나 경영 판단의 원칙 도입 등 보완책이 마련되면 오히려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또 "미국이나 유럽 등은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경영 활동이 위축된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상법 개정이 당장 기업에게 독이 된다고 예단하기 어렵다"면서 "상법 개정으로 주주들의 권한 강화라는 선언적 의미는 갖게 되지만 실제 소송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