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덕 발의 디자법, 의미 있는 첫걸음이나 … 정교한 설계 필요기존 금융법 조항 차용 많고 핵심 산업 규율 빠져 있어방향 긍정적, 구조는 미완성 … 정교한 법제화 조율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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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자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며 실물경제와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마침내 제도화의 퍼즐이 하나둘씩 맞춰지고 있다. 최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새로운 금융질서를 향한 입법적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기본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독립성, 그리고 디지털자산 산업의 역동성을 담을 설계로서의 완성도는 아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기초공사는 시작됐다 … 설계도는 조금 더 정교하게”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민 의원안은 자산 발행·유통, 공시, 거래지원, 불공정거래 금지, 스테이블코인 규제 등 디지털자산 산업 전반에 대한 틀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이용자 보호 중심의 최소 규제였다면 이번 기본법은 산업의 육성과 질서 정립을 위한 넓은 그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방향성 자체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구체적 조문을 살펴보면 자본시장법·금융소비자보호법·전자금융거래법 등 기존 법체계에서 조항을 차용했음에도 디지털자산만의 기술적 특성과 시장 구조를 반영한 ‘독립적 체계’로 발전하지는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제6조(인가요건)는 자본시장법 제8조를 일부 차용했지만 탈중앙화 등 디지털자산 고유의 리스크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으며, 제12조(이용자 보호)는 기존 소비자보호법에서 핵심인 ‘적합성 원칙’은 제외하고 ‘설명의무’만 따로 적용해 체계성과의 단절이 우려된다.

    한 변호사는 “새로운 길을 내는 데 익숙한 길을 참조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다만 그 길이 기존 길과 어긋나지 않게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행령 위임 많고 NFT·디파이 빠져 … “빈틈보다 여지를 남긴 구조”

    법안의 많은 조항이 대통령령 등 시행령에 위임돼 있다는 점도 과제로 꼽힌다. 규율의 핵심을 하위 법령으로 넘기면 법률 자체의 실효성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이를 ‘여백’으로 볼 수도 있다. 급변하는 시장 특성을 고려하면, 일정 수준의 유연성을 남긴 설계는 오히려 향후 실무와 정책 사이의 충분한 소통 가능성을 열어두는 포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커스터디(수탁업), NFT(대체불가능토큰), 디파이(탈중앙금융) 등 실무 현장에서 핵심이 되는 산업 분야에 대한 정의와 규율 체계가 빠져 있다는 점은 보완이 필요한 대목이다. 산업이 빠르게 진화하는 만큼, 이들 영역을 아우를 수 있는 규정은 입법 후속 단계에서 반드시 반영돼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미국은 서명, 한국은 논의 중 … 글로벌 격차 벌어질 수도”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는 디지털자산 제도화가 한 발 앞서 나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시키는 ‘지니어스 법(Genius Act)’에 서명하며, 달러 중심의 글로벌 금융질서 재정비에 시동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이 법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잠재력을 실현할 명확한 규제 틀을 제공한다”며 “인터넷의 탄생 이후 가장 위대한 금융기술 혁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니어스 법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때 같은 가치의 달러나 미국 국채를 반드시 담보로 보유하도록 규정하며 이를 통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글로벌 경쟁국들이 명확한 규제 방향과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제도화가 조율 지연으로 계속 늦춰진다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때 신뢰는 멀어진다”

    민 의원안은 디지털자산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업권 자율규제기구의 설립을 포함하는 등 일부 미래지향적 시도도 담고 있다. 하지만 자산 정의, 규제 범위, 감독 권한 등의 정합성은 더 세밀한 보완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자산 산업의 생애주기를 포괄하는 메타설계가 시급하다”며 “정부 입법과의 통합 조정,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간 역할 정립, 법제처 중심의 체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관련 감독 주체를 두고 금융위와 한국은행 간 견해차가 존재하는 만큼, 통화정책·금융안정·산업 진흥 간 균형점을 찾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적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 금융법 전문가는 “지금은 법제화의 미완성이라는 비판보다, 그동안 비어 있었던 제도적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지금 필요한 건 완벽함이 아닌, 미래를 위한 협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