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vs DL, 여천NCC 자금 지원 놓고 이견부도 현실화 땐 2·3차 벤더 연쇄 도산 가능성석유화학, 반도체·자동차·건설 등 제조업 근간산업생태계 붕괴 '경고등'… 신속 대응책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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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수 국가산업단지 전경ⓒ뉴데일리DB
국내 3위 에틸렌 생산업체인 여천NCC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현실화하며 산업 전반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다양한 산업에 필수 소재를 제공, 제조업의 근간이 돼온 석유화학산업이 무너지면 제조업 전반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석유화학산업은 단순히 화학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전자, 자동차, 건설 등 수많은 전후방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수출 5대 품목이기도 한 석유화학산업의 전후방 고용 유발 인원은 40만명에 달한다. 석유화학산업 위기가 한국 제조업 전체와 맞물려있다는 얘기로, 여천NCC 사태가 국가 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12일 업계에 따르면 여천NCC에 대해 DL그룹이 유상증자를 결정하며 자금 지원의 길이 열렸지만, 사태 책임을 두고 주주 간 갈등이 커지는 모양새다. 여천NCC의 공동 대주주인 한화와 DL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을 시 자금 지원의 길이 막혀 부도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여천NCC는 오는 21일까지 운영자금 3100억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디폴트에 빠지게 된다. 이에 한화는 여천NCC에 15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DL은 유상증자로 자금 확보 방안을 마련한 이후에도 현재까지 자금 지원 결정은 내리지 않고 있다. DL이 원료 공급계약 관련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여론전에 몰두해 골든타임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여천NCC는 에틸렌 생산능력이 LG화학·롯데케미칼에 이어 국내 3위 기업으로, 업황 사이클에 따라 연간 3000억원에서 1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던 알짜 회사다. 두 모회사에 지급한 배당금만 누적 약 4조4000억원에 달한다. 2016년 사업보고서를 낸 334개 기업 중 직원 평균 연봉 1위(1억1990만원)를 기록하며 ‘신의 직장’으로 불리기도 했다.하지만 2022년부터 내리 적자를 냈다. 최근 3년 누적 적자만 8200억원에 달한다. 중국이 2020년 이후 석유화학제품 생산능력을 대폭 키우며 물량공세에 나섰고, 국내 석유화학기업의 범용제품들은 경쟁력을 잃게 됐다. 중국의 에틸렌 생산량은 연 5200만톤(t) 규모로, 우리나라(1090만t)의 다섯 배에 달한다.여천NCC 사태는 비단 개인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란 점에서 심각성이 대두된다.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SK지오센트릭, HD현대케미칼, 효성화학 등 주요 석유화학사들이 같은 위기에 처해있다. 반도체, 자동차와 함께 수출을 주도하고, 고용과 지역경제를 이끌어 온 석유화학산업은 현재 벼랑 끝에 내몰려있다.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석유화학산업이 무너지면 제조업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석유화학은 플라스틱·합성섬유·자동차 부품·전자재료 등 제조업 원재료 대부분을 공급하는 ‘뿌리 산업’이다. 수많은 협력사와 지역 고용·세수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산업생태계 전체의 ‘균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실제 석유화학산업 붕괴 시 제조업 경쟁력 지표부터 약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원재료 가격 불안과 공급망 약화는 중간재·완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이는 수출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여수, 울산, 대산 등 지역 산업단지 취약화는 지역 고용 충격과 내수 침체로 전이돼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게 된다.이제라도 정부가 나서 NCC(나프타 분해 설비)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HD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이 NCC 통합 협상을 진행 중이나, 자산 가치 평가 등에서 이견을 보이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 간 통합 운영에 현실적 제약이 큰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일본 정부는 1990년대 초 에틸렌 생산능력 10% 이상 감축을 목표로 ‘석유화학 재편 계획’을 마련, 주요 석유화학 기업 합병과 설비 폐쇄를 권고했다. 그 결과 미쓰비시화성과 미쓰비시석유화학이 합병해 미쓰비시화학이 출범했고, 미쓰이도아쓰와 미쓰이석유화학이 합병해 미쓰이 화학이 만들어졌다.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금융 지원과 세제 혜택을 제공해 업계가 약속을 이행하도록 유도했다”며 “결과적으로 일본 에틸렌 생산능력은 세계 2위 수준에서 현재 7위로 낮아졌고, 고부가 제품 전환으로 수익성을 회복했다. 우리도 일본처럼 과감한 감축 없이는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정부는 지난해 12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 발표 후 올해 6월 후속대책을 내놓기로 했으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세부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 산업통상자원부와 석화업계가 관련 협의체를 꾸린 사실을 고려하면, 국가 기간 산업의 벼랑 끝 위기가 1년 넘게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국민의힘 김대식 비상대책위원은 지난 11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석유화학이 붕괴 위기 직전에 서 있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특정 기업만의 위기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위기라는 점”이라며 “석유화학 위기 골든타임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즉시 대책 마련에 나서 달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