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 진단과 해법은준비금 착시, 누수 방치, 재정 통제 실종 … 적극적 대안 절실 수입 기반 확충·지출 효율화·불법 척결·사회적 연대 필요한 골든타임
-
- ▲ 김필권 前 국민건강보험공단 기획상임이사.
"착시에 갇혀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체감하지 못하는 상태다. 지금처럼 안일하게 가면 국민 건강권 자체가 위험해질 것이다. 신속하게 전방위적 대책이 가동돼야 한다. 우리는 절체절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김필권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기획상임이사는 최근 뉴데일리와 만나 초고령사회로의 빠른 전환 속에서도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사회적 감각이 무뎌졌다고 진단했다. 단순한 숫자가 아닌 의료의 지속성과 국민 삶의 질을 좌우하는 시스템의 위기라는 경고다.1987년 아산군 의료보험조합에서 평사원으로 출발해 경북북부지사장, 자격부과실장, 대전지역본부장, 기획상임이사, 이사장 직무대리까지 경험한 그는 조직의 말단부터 정점까지 경험한 '건보 통(通)'이다. "건보는 내 인생 전부였던 조직"이라는 그의 말은 위기 진단이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지난 13일 이재명 정부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핵심과제로 내세우며 공공병원 혁신과 공공의대 신설, 필수의료 보상체계 개선, 지역 의료격차 해소 등 보건의료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그러나 지역·공공의료를 확충하고 만성질환·정신건강 등 돌봄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청사진이 실행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그 재정적 토대가 되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이 전제돼야 한다.김필권 전 이사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지금이야말로 건강보험 재정을 구조적으로 재정비할 마지막 기회"라며 현 시스템의 위기와 개혁의 필요성을 짚었다.◆ 흑자는 착시,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최근 건강보험은 4년 연속 당기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2024년 기준 누적 준비금은 약 29.7조 원으로 역대 최고치다. 그러나 김 전 이사는 "이는 일시적인 외부 요인과 정부 보조금 확대, 자금 운용 수익 등이 만든 착시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2024년 수련병원 급여비 감소와 1조4844억 원의 선지급금까지 감안하면 본질은 구조적 위기다.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건강보험 총수입 중 86.2%가 보험료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생산연령인구가 급감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보험료에만 기댄 재정 구조는 매우 취약하다.또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이 오는 2028년 완전히 소진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재정 고갈을 막기 위해선 현행 7.09%인 보험료율을 2032년까지 최대 10.06%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전망도 나왔다.김 전 이사는 "재정 고갈이 오면 가장 먼저 중단되는 건 고비용 필수진료다. 결국 국민 건강권부터 무너진다는 의미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표면적 흑자에 가려 실제 위기를 놓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핵심 원인 저출산 고령화의 늪김 전 이사는 재정 위기의 가장 근본적 원인으로 '저출산-고령화' 인구구조 변화를 꼽았다. 생산가능인구는 줄고 고령층의 의료비 지출은 급증하고 있다.2023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19년 746만명에서 2023년 922만 명으로 23.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노인 진료비는 35조7925억원에서 48조9011억 원으로 36.6% 급증했다. 인구 증가보다 진료비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올해 상반기(2025년 6월 기준) 이미 노인 진료비는 28조 원을 넘어섰고 이 추세라면 연말에는 55조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진료비 대비 노인 진료비 비중은 이미 50%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된다."고령화는 단순한 수의 증가가 아니라 평균보다 2~3배의 의료비 지출을 의미한다"는 것이 김 전 이사의 진단이다. 이는 곧 보험료 수입은 줄고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재정 이중고'를 의미한다.◆ 재정 누수와 도덕적 해이김 전 이사는 특히 사무장 병원 등 불법 의료기관으로 인한 재정 누수를 '건보를 좀먹는 내부의 적'이라고 표현했다. 2023년 기준 사무장 병원으로 인한 누수 피해는 약 3.3조 원에 이르며, 최근 5년간 환수율은 7.56%에 불과하다. 적발된 기관의 96.3%는 폐업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또한 의료기관 부당청구와 건강보험증 도용 등으로 인한 손실도 매년 수백억 원 규모다. 그는 "건보 재정이 무너지는 데 한몫하고 있는 구조적 누수 요인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강조한다.◆ 보험료 인상 논의할 때다김 전 이사는 "보험료 인상을 무조건 미루는 것은 미래세대에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2024~2025년 보험료율을 동결했지만 2026년부터는 인상이 불가피하다.그는 "보험료율 인상 논의와 함께 반드시 부과체계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직장가입자 간 상한-하한 격차는 455배, 지역가입자의 낮은 부담 대비 과도한 급여 혜택 등 형평성 문제는 구조 개편 없이는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소득 중심의 단일 부과체계로 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는 설명이다.수입 확충만큼 중요한 것은 지출 통제다. 김 전 이사는 "보장률만 높이는 접근은 의료 시스템의 왜곡과 과잉 이용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대형병원 쏠림, 불필요한 검사, 의료쇼핑 등은 결과적으로 진짜 환자의 접근권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불법은 발본색원, 내부 고발 시스템도 키워야김 전 이사는 사무장 병원 등 불법 의료기관에 대한 단속·처벌 강화를 '정의의 회복'이라고 했다. 그는 "불법행위가 방치되면 성실 납부자의 신뢰는 무너진다. 이는 곧 건보의 존립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경고한다.특별사법경찰권, 의료생협 개설 제한, 진입단계 통제, 운영 중 모니터링, 처벌 강화 등은 모두 필요하며 무엇보다 내부 고발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건강보험은 사회적 계약… 생명권 보장의 마지막 방파제"건강보험은 국민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복지 제도다. 이것이 무너진다는 것은 생명을 보장받을 최소한의 계약이 깨지는 것을 의미한다."지금의 재정 위기를 단순한 수지 계산의 문제가 아닌 국민 생명권과 사회적 연대의 위기로 진단한 것이다. 즉, 재정 건전화는 세대 간 형평성과 연대의 실현이며 단기 흑자에 안주하지 않고 근본적인 개혁에 나설야 한다는 주장이다.그의 경고는 날카롭고 직설적이지만 동시에 방향이 분명하다. 김 전 이사는 "착시에 현혹되지 말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다. 그 허리띠는 국민 전체가 함께 매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