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내년 하반기부터 단계적 시행 … 10만 병상 목표환자들도 '급여화 절실' vs '중증도 우선 고려' 의견 엇갈려페이백·환자 유치 중심 운영 등 요양병원 구조적 문제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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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 하반기부터 요양병원 간병비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환자와 가족이 전액 부담하던 간병비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만큼 사회적 기대는 크지만 현장에서는 상반된 해석이 교차한다. 의료 중심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정책 취지와 달리 재정 악화와 병원 구조조정이라는 파고가 동시에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 본인부담 30% … 500곳 의료중심 요양병원 지정복지부는 123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요양병원 간병비 본인부담률을 현재 100%에서 2030년 30% 안팎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국 요양병원 중 의료 필요도가 높은 환자를 돌볼 역량을 갖춘 '의료중심 요양병원'을 단계적으로 확대, 2030년까지 500곳(약 10만 병상)을 지정한다는 계획이다.2023년 12월 기준 전국 요양병원은 1391곳(병상 26만4000개)이며, 입원 환자는 약 21만5000명이다. 이 가운데 고도·최고도 등 의료 필요도가 높은 환자는 약 8만명으로 정부는 내년 200곳을 시작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해 이들 환자의 간병비 부담을 줄인다는 구상이다.의료중심 요양병원은 일정 비율 이상의 중증 환자 수용 능력, 병실 구조(4인실 기준), 간병 인력 배치 등 선정 기준을 충족해야 지정될 수 있다. 본인부담률이 30%로 낮아질 경우, 현재 월평균 200만~267만 원 수준인 간병비는 60만~80만 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정부는 또 객관적 판정 체계를 마련해 환자의 의료 필요도를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수도권 외 지역에서는 외국인 인력을 활용해 간병인 수급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이중규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현재는 간병인 1명이 환자 4~6명을 24시간 돌보지만 앞으로는 간호사처럼 3교대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며 "휴가까지 고려하면 4인실을 위해 간병인 5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간병비 건강보험 급여화에는 5년간 약 6조50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지속 가능한 재정 관리를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 내에 재정·환자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해 이용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간병비 급여화 추진의 맹점전문가들은 간병비 급여화의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지만 제도의 우선순위와 재정 설계가 맞물려 있는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본래는 의료전달체계 안에서 환자의 중증도와 의료 필요도를 기준으로 한 분류·연계 시스템이 먼저 확립돼야 하는데 급여화 그 자체에 방점이 찍히면서 현장 혼란과 함께 재정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핵심은 지속 가능성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이미 2026년 적자 전환, 2033년 준비금 고갈이 예고돼 있다. 장기요양보험 역시 2030년이면 바닥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맞물려 고가 신약의 급여화, 치료 접근성 확대 요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보험료 부담 여력이 줄어드는 점은 치명적 변수다.여기에 간병 급여화로 신규 수요까지 유입되면 정부가 제시한 5년 6조5000억 원 규모의 재정 소요가 현실에서는 이를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특히 정부가 일정 수의 병상과 병원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할 경우 지역별 편차와 형평성 문제도 불가피하다. 비수도권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고 의료 필요도가 높은 환자조차 지역에 따라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한 보건정책 전문가는 "간병비 지원은 중요한 사회안전망이지만 중증 환자 중심의 의료 필요도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급여화부터 밀어붙이면 병상 운영과 환자 분류 기준이 흔들릴 수 있다"며 "이 경우 진짜 필요한 환자는 여전히 배제되고, 관리가 쉬운 환자들만 채워지는 불균형 구조가 고착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또 다른 전문가는 "요양병원의 역할은 지역사회 환자들을 적정하게 분류·연계하는 것인데, 급여화가 우선되면 의료 필요도가 낮은 환자까지 제도에 편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결국 재정은 더 빨리 고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양병원도 현실 직시해야간병비 건보 적용은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 보면 막대한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안전망이다. 실제 환자단체 일부는 "일본도 공적 간병 제도 도입 후 환자 인권이 크게 개선됐다"며 제도를 환영한다. 간병비 부담 때문에 병원을 옮기다 돌봄 공백으로 악화된 사례가 있는 만큼, 최소한의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반면 다른 단체들은 요양병원 구조적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환자단체 관계자는 "요양병원들은 의료 기능보다 환자 유치 경쟁에 치중해 왔고 환자를 모집하기 위해 페이백(리베이트)과 같은 불투명한 거래가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고 꼬집었다.이 관계자는 또 "병원이 의료 기능보다 장기입원을 통한 수익 확보에 몰두하면서 사회적 입원 문제가 심화됐고 환자 가족에게는 불필요한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가 굳어졌다"며 "간병비 급여화가 이런 왜곡된 운영 행태까지 바로잡지 못한다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요양병원계 고위 관계자도 "지금부터라도 의료 필요도가 높은 환자의 비율을 늘려 병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면 다수 요양병원은 결국 제도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는 "정책 변화를 주시하며 민첩하게 대응책을 마련하고, 환자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의료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는 병원은 살아남기 어렵다"고 강조했다.한편 복지부는 간병비 급여화 관련 수렴한 의견을 반영해 의료중심 요양병원 선정 기준, 간병 인력 수급·관리 방안 등을 정리한 추진 방향을 오는 25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보고할 예정이다. 이후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해 세부 방안을 마련하고 심의를 거쳐 올해 12월 최종안을 발표한다.간병비 급여화는 환자에게는 안전망, 병원에게는 생존 시험대가 될 것이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설계의 정교함이다. 이 균형을 놓친다면 제도는 안전망이 아니라 혼란의 뇌관으로 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