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점유율 급락, 중국 추월로 뒤바뀐 K-배터리 위기직접환급·3자 양도·크레딧 활용 등 실질적 지원 필요K-배터리사 현재 정부 지원 필요 골든타임 진단
  • ▲ 23일 오전 9시 30분 국회에서 열린 '글로벌 배터리 시장 변화와 K배터리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회토론회' 현장ⓒ이미현 기자
    ▲ 23일 오전 9시 30분 국회에서 열린 '글로벌 배터리 시장 변화와 K배터리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회토론회' 현장ⓒ이미현 기자
    “2015년 우리 회사는 중국 지방정부로부터 분리막 생산공장을 지어 사업을 하라며 땅과 자금을 모두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LCD 산업이 중국으로 넘어간 것처럼 배터리도 제2의 LCD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거절했고, 한국에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통상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먼저 시행된 정책들은 가급적 국내에서도 추진되길 바란다.”

    김병현 더블유씨피 부사장은 23일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과 한국배터리산업협회가 공동 주최한 ‘글로벌 배터리 시장 변화와 K배터리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업계와 학계 인사들이 한목소리로 신속한 ‘한국판 IRA’ 도입을 촉구했다. 한국판 IRA에는 국내 배터리 생태계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직접환급형 세액공제, 3자 양도, 크레딧(Credit) 활용 등 실질적인 제도가 포함돼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현재 미국과 유럽은 첨단산업 유치를 위해 현금성 지원 등 강력한 인센티브를 도입하고 있으며, 중국은 막대한 보조금으로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확보한 상황이다. K-배터리의 글로벌 점유율은 2011년 44%에서 2024년 19%로 급락했다. 2011년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 26.4%로 1위였던 삼성SDI는 2024년 7위(3.3%)로 내려앉았고,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도 5위(8.2%)로 하락했다.

    김세호 LG경영연구원 수석위원장은 “2011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평평한 운동장’이었다. 한국과 일본 기업이 실력으로 정면 승부를 벌이며 성장을 이끌었다”면서도 “2015년을 기점으로 중국에 추월당했다”고 진단했다.

    산업 판도는 2015년부터 중국 정부가 보조금과 각종 지원책을 앞세워 배터리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면서 뒤집히기 시작했다. 김 위원은 “사실상 ‘중국제조 2025’ 전략 덕분”이라며 “중국 정부는 배터리 산업 육성을 위해 조단위를 쏟아부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적자 누적과 세액공제 실효성 부족, 제도적 불확실성으로 투자 여력이 점점 줄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국가전략기술에 대해 직접 환급이나 제3자 양도 제도 등이 도입돼야 기업들이 기술 투자 여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고 요구했다.

    법무법인 율촌의 안정혜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캐나다·EU·중국 등 여러 국가는 이미 직접환급형 세액공제 유사 제도를 운용 중이다. 미국의 경우 IRA 제도 하에서 45X 생산세액공제를 통해 배터리 제조업체가 생산 및 판매 실적에 따라 세액공제를 받고, Direct Pay 옵션으로 공제액이 세금을 초과하면 현금으로 환급받거나 Transferability 옵션으로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 '글로벌 배터리 시장 변화와 K배터리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배터리협회
    ▲ '글로벌 배터리 시장 변화와 K배터리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배터리협회
    토론회는 중국을 ‘황새’, 한국을 ‘뱁새’에 비유하는 등 업계의 하소연과 성토가 쏟아진 자리였다. 노명호 삼성SDI 그룹장은 “국내 배터리사들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해외에서 보조금을 주느냐, 안 주느냐에 따라 휩쓸리는 상황”이라며 “친정집(한국) 기둥을 뽑아 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만큼 선택과 집중을 통해 리소스를 어디에 투입할지 결정하고, PTC(생산세액공제)·ITC(투자세액공제)를 가리지 않고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우섭 LG에너지솔루션 전무는 “이재명 대통령이 K-배터리 활성화 의지를 표명한 만큼, 직접환급제도 도입을 위해 기획재정부의 마지막 허들을 넘어 전향적인 결론이 나오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동현 SK온 팀장은 “이 아젠다는 2년 전에도 제기된 바 있다”며 “적자 누적 탓에 세액공제 혜택조차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고, 직접 환급이 어렵다면 크레딧(Credit) 활용 등 실질적인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토론회 방청객으로 참석한 고려아연 김기준 ESG총괄 부사장도 “세계 1위를 만들기 위해 여기 있는 기업들이 밤을 새워가며 노력하고 있다”며 “그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재정 산업통상자원부 배터리과 과장은 “정부도 이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내달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