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3500억불 대미 투자 조건 '무제한 통화스와프' 카드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 … "美는 기축통화국과만 통화스와프"현실적인 카드 있어야 … "한도 정해서 한시적 요청은 가능할 수도""산업 경쟁력 강화하고, 국익 위해 외환보유액도 더 늘려야"
  • ▲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뉴시스
    ▲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3500억달러(약 48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조건으로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강조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통화스와프란 미국 달러와 한국 원화를 일정 환율로 맞바꾸는 계약을 뜻한다. 예컨대 한국은행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에 원화를 예치하고 그만큼 달러를 빌리는 형태다. 외환시장의 달러 부족 문제를 덜어내는 등 외환시장에 가해질 충격을 줄일 일종의 '안전판'이다. 

    이 대통령이 3500억달러 대미 투자를 조건으로 통화스와프를 공론화한 만큼 미국도 고민할 수 있단 일부 관측도 있지만 기축통화 달러를 보유한 미국이 비기축통화인 원화가 필요 없어 이를 한미 관세 협상의 유효한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존재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23~24일 이틀에 걸쳐 가진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미국에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요구하는 것은 미국으로선 들어줄 가능성이 없다"며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해서는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국제 통화를 가진 나라에게는 통화스와프를 맺어주는데, 그 이유는 위기 상황에서 바꿔 쓸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국제 통화가 아닌 원화는 받아도 쓸 데가 없어 미국이 통화스와프를 해줄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아프리카 국가로부터 자국 통화를 빌려줄 테니 통화스와프를 해달라고 요청받는다면 수용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미국도 마찬가지다. 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당시에는 국제 금융 시스템이 붕괴될 위기였기 때문에 한국과 한시적으로 통화스와프를 체결해준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근 신흥국 중 일부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통해 금융시장 안정성을 확보한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과 멕시코는 미국과의 협력 강화 및 외환보유 확대를 병행하며 국가 신뢰도를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다만 김 교수는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한도를 정해 한시적으로 제한된 금액으로 요청한다면 미국이 수용할 수도 있다"며 "한국 측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 관계가 있는 인사 등 국제 금융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면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와 관련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확장 재정이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약화시켜 금융 안정성에 의문을 갖게 만들고 통화스와프 체결 협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확장 재정이) 단기적으로는 유효할 수 있어도 장기화될 경우 한국 경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확장 재정 기조가 장기화되면 대외 신인도 하락 등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신뢰도를 높이고 원화의 가치도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외환보유액을 점진적으로 늘려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올해 8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62억9000만달러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23%로 세계 하위권에 속한다. 

    반면 일본은 1조2307억달러로 GDP 대비 30.6%에 달한다. 대만은 GDP(7824억달러)가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외환보유액이 5766억달러로 한국보다 1610억달러 많다. GDP 대비 외환보유액 비율은73.7%에 달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외환보유액을 늘리려면 정부가 달러를 매입해야 하는데, 그러면 미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어 지금은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김 교수는 "또 정부가 달러를 비축하면 원화 가치가 떨어져 환율이 올라가고, 그러면 수입 물가도 함께 올라간다"며 "정부가 국민 눈치를 살피게 되면 외환보유액을 대폭 늘리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것이 좋다"며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 수출을 늘려 무역수지 흑자가 많이 나면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해 달러가 더 늘어나고, 그렇게 되면 환율이 다시 내려가 외환보유액을 늘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결국 정부가 물가가 조금 올라가더라도 국익을 우선해 외환보유고를 많이 축적해 부자 나라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국민 개인의 이익을 우선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

    ◆김정식 

    1953년생으로 연세대에서 경제학 학사‧석사, 미국 클레어몬트대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위원장, 한국은행 국제국‧조사국 자문 교수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