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제 호조·대미 투자 압박 겹치며 불안 확산"단기 상단 1420원 … 극단적 땐 1600원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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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러 강세와 대미 투자 압박이 겹치며 원·달러 환율이 넉 달 만에 1410원을 돌파했다. 지난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1.8원 오른 1412.4원에 마감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3500억 달러 선불” 발언과 미국 경제 호조가 겹치면서 불안 심리가 커졌고, 글로벌 금융위기·탄핵·팬데믹 등 격랑기에만 나타났던 고환율 구간에 재진입했다는 경계감이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협상 타결 없인 환율이 1600원대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트럼프 “선불” 압박 … 3500억달러 대미투자 불안

    불씨를 키운 건 한·미 통상 협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한국이 미국에 투자할 3500억달러는 선불(up front)”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투자 합의가 아니라 현금 유출 압박으로 읽히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3500억달러는 8월 말 기준 한국 외환보유액(4163억달러)의 84%에 해당하는 규모다. 물론 실제로 전액 현금 지출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지만 그만큼 시장이 충격을 우려하는 대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투자 규모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불확실성 속에 외국인 자금은 주식시장에서 순매도로 돌아섰다. 이날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8322억원을 팔아치웠고, 지수는 2.45% 급락한 3386.05에 마감했다. 환율 불안과 글로벌 달러 강세가 맞물리며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것이다.

    ◇美 경제 호조·연준 신중론, 달러 강세 이끌어

    환율을 끌어올린 또 다른 요인은 미국발 경제 지표다. 2분기 GDP 성장률 확정치는 연율 3.8%로 잠정치(3.3%)를 웃돌며 2023년 3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규 실업보험 청구 건수 역시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며 고용이 견조함을 보여줬다.

    이에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는 약화됐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성급한 인하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미완에 남길 수 있다”며 매파적 기조를 재확인했다. 달러 인덱스는 98선을 돌파하며 달러 강세를 뒷받침했다.

    ◇1600원 전망까지 … 정부 대응 시험대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단기적으로 1420원 돌파를 시험할 수 있다고 본다.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연구원은 “미국 지표가 견조한 만큼 역외 매수세가 1410~1420원 상단을 테스트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최규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물가와 통화정책 불확실성으로 환율의 단기 하락은 어렵다”면서도 “연말에는 물가 둔화와 협상 진전으로 환율이 내려올 여지도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미투자 자금이 실제로 유출될 경우 환율이 1600원까지 뛸 수 있다”는 극단적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환율 급등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부담을 준다. 금리를 내릴 경우 원화 약세와 자본 유출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국고채 금리도 일제히 상승하며(채권 가격 하락) 시장의 불안을 반영했다.

    정부는 외환시장 충격 완화를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통상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 외환당국의 개입만으로는 불안을 잠재우기 어렵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