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100' 넘어 '100대 300'까지 … 수수료 역전 현상CSO 바잉파워, 의사 처방권 흔드는 기형 구조연구개발 외면 제약사 기생 영업 … 약국·건보 재정 피해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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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베이트를 끊어내려고 해도 과열된 CSO(위탁영업조직) 탓에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신고제가 있지만 자금 흐름이 복잡해 실효성이 없다. 정책적 규제가 없이는 시장 질서가 회복되기 어렵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생태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국내 한 제약사 임원의 토로다. 제도권에 편입된 CSO가 제약 영업의 주요 축으로 부상했지만 과열된 수수료 경쟁과 그림자 영업은 여전히 업계를 옥죄고 있다.

    ◆ 수수료 전쟁, 처방권까지 흔들다

    일부 제약사들은 '100대 100'을 넘어 '100대 200', '100대 300'까지 수수료를 얹어주는 기형적 프로모션을 내세운다. 처방액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금액을 CSO에 지급하는 구조로 매출의 두세 배가 고스란히 수수료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도매업계 한 관계자는 "공개적으로 알려져 논란이 된 것뿐이지, 사실 이런 방식은 이미 업계에 상용화돼 있다"며 "특정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전반의 구조적 병폐"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과열 경쟁이 단순한 영업 차원을 넘어 의사의 처방권까지 흔든다는 점이다. 

    CSO가 바잉파워를 쥐고 제약사와 계약 조건을 주도하며 처방 구조를 사실상 통제하는 기형적 현실이 고착화되고 있다.

    지역의 한 약사는 "갑작스러운 처방 변경이 반복되면 약국은 재고 관리가 불가능하다"며 "꾸준히 나가던 약이 하루아침에 바뀌면 남은 재고는 악성 재고로 전락해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부는 지난 2024년 10월부터 CSO 신고제를 도입해 등록·계약서 보관·재위탁 고지 의무를 강화했다. 하지만 제약사가 하위 CSO의 영업 행태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약업계 관계자는 "CSO가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면 제약사도 직접 제재를 받는다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태도"라며 "결국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는 한 모든 리스크는 제약사 몫"이라고 지적했다.

    한 로펌에 따르면 "법원은 재위탁 사실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관리하지 않았다면 제약사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제약사가 '몰랐다'는 이유로 리베이트 면책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세무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과세당국은 영업 수수료가 불법 리베이트 재원으로 쓰였다고 판단하면 해당 비용을 손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업계의 한 회계 담당자는 "소규모 CSO는 회계 처리와 증빙이 허술한 경우가 많아 제약사가 지급한 수수료 전액이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는 사례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형사 리스크는 더 치명적이다. 제약사가 불법 행위를 직접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방조로 인정되면 공동정범으로 처벌된다. 업계 법률 전문가에 따르면 "수억 원대 사건에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실형 선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 산업 구조 왜곡, 혁신의 발목

    CSO 의존 영업은 법적 문제를 넘어 산업 경쟁력 자체를 갉아먹는다. 매출 5000억원 이하 중소 제약사들이 연구개발보다 CSO 영업에 치중하면서 '기생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단기 매출에만 몰두하면 신약 개발은 정체되고 한국 제약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CSO는 보조 수단이어야지 주력 전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가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 신고제만으로는 사각지대를 메울 수 없다는 것이다. 지출 보고 의무 강화, 수수료 상한제 검토, 위반 시 강력한 처벌 규정 마련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결국 제약사 스스로 내부 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CSO와의 계약 투명성을 높이고 자율적 관리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규제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CSO 전성시대는 효율적 영업 수단이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과열된 수수료 경쟁과 관리 부실은 유통 질서와 처방권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피해는 약국과 환자, 그리고 건보 재정으로 귀결된다.

    정부의 규제 강화와 제약사의 책임 있는 관리 없이는 시장의 신뢰 회복은 요원하다. CSO의 그림자 영업은 단순한 영업 관행이 아니라 제약산업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는 뇌관이다. 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지금이야말로 규제와 자율의 균형을 통해 산업의 신뢰와 지속 가능성을 되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