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 명분에 심야배송 제한 논의 … 시장 개척 기업 직격2000만 이용자·유통망 충격 우려 … 노조 내부도 일률 금지 반대전문가 "서비스 중단 아닌 제도 보완 … 지속 가능한 모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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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이 규제 논란의 한가운데 섰다. 노동자 건강권 보호라는 명분 아래 심야 물류센터 운영 제한 방안이 논의되면서 수조원을 들여 시장을 키운 쿠팡·컬리 등 이커머스 선도 기업들이 되레 규제의 표적이 됐다는 지적이다.
- ▲ 택배노조가 새벽배송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뉴데일리DB
약 2000만명 소비자의 일상과 온라인 혁신 생태계 전반에도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불법이나 과도한 경영 리스크가 확인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산업을 개척한 기업들이 가장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점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5일 업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은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 회의에서 0시~5시 초심야 배송 전면 금지안을 제안했다.
택배노조는 밤 12시까지와 오전 5시 이후 배송은 허용하되, 초심야 노동만 제한하자는 취지라며 ▲오전 5시 출근조 편성 ▲배송 물량 조정 ▲긴급품목 예외 적용 등을 제시했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야간노동을 2급 발암 요인으로 분류한 점, 택배기사 야간재해 비율이 2019년 10.1%에서 2023년 19.6%로 늘어난 점도 근거로 들었다.
새벽배송은 2014년 첫 도입된 이후 국내 이커머스 성장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다. 2018년 5000억원 수준이던 시장 규모는 올해 15조원으로 7년 만에 30배 급증했다. 맞벌이·1인 가구·영유아 가정 등이 밤 주문→아침 수령에 익숙해지며 필수 생활 서비스로 자리잡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쿠팡·마켓컬리·오아시스마켓 등 관련 서비스 회원 수는 약 2000만명에 달한다. 배송 품목도 신선식품에서 의류·화장품·가전제품까지 확장되며 내수 유통 생태계의 핵심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새벽배송에 익숙한 소비자의 일상이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와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이 진행한 택배 배송 서비스 인식조사에 따르면 최근 6개월 내 새벽배송을 이용한 전국 소비자 1000명 중 98.9%가 "앞으로도 계속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새벽배송 중단 시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9.4%에 그쳤다.
서비스 만족도 역시 71.1%, 꼭 필요하거나 있으면 좋은 서비스라는 응답은 89.0%에 달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새벽배송이 중단되면 생활 패턴이 무너진다", "소비자·판매자 모두 타격"이라는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산업계도 반발하고 있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는 전날 성명을 통해 "새벽배송 전면 제한은 소비자 불편과 농어업인·소상공인 피해, 물류 종사자 일자리 감소 등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맞벌이·1인 가구의 생활 편익이 급감하고 농수산물 공급망에도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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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내부에서도 이견이 나온다.
- ▲ ⓒ쿠팡
쿠팡 정규직 배송기사 노동조합(쿠팡노조)은 지난달 30일 "5시 이후에 배송을 하려면 간선 기사들과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밤새 일을 해야 한다"며 "새벽배송이 이제 국민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서비스로 자리 잡은 현실을 외면하고 단순히 야근 근로를 줄이자는 주장만으로 새벽배송을 금지하는 것은 택배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쿠팡과 컬리 등 새벽배송 이커머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쿠팡은 지난 10년간 로켓배송 인프라에 6조2000억원 이상을 투자했고 앞으로도 3조원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컬리도 수조원을 들여 물류망을 구축하고 장기 적자를 감내한 끝에 올해 상반기 흑자로 전환했다.
업계 관계자는 "신선식품 납품사 등 얽힌 공급망을 고려하면 경제적 피해가 상당할 것"이라며 "국내 업체가 위축되면 공격적으로 시장을 확대 중인 중국계 이커머스가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에는 공감하면서도 일률적 금지 대신 제도 개선을 통한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맞벌이 부모나 수험생을 둔 가정처럼 새벽배송이 이미 일상에 자리 잡은 계층이 많다"며 "누구에게 그들의 일상 편익을 빼앗을 권리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벽배송은 수많은 근로자들의 생계 기반이자 경제 활동으로 다른 사람의 일거리를 빼앗는 방식의 제한은 사회적으로도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면서 "정책이 발전을 촉진하기보다 발목을 잡는 방향으로 가면 장기적으로 시장 쇠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새벽배송은 소비자가 이미 원하고 만족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자리 잡은 것"이라며 "새벽배송이 없어진다고 해서 현실의 수요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만큼의 불편과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문제의 본질은 서비스 자체가 아니라 근무 환경"이라며 "충분한 휴식 보장, 교대제 운영, 야간 근무 수당 등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 서비스와 권익 보호가 동시에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