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500여 개 연구실 중 30% 차지로봇·AI로 실험 … 퀄컴·삼성과도 협력성과 중심·인재 확보로 기술 자립 가속
  • ▲ 중국 베이징 북서부 하이뎬구에 자리한 ‘샤오미 베이징 테크놀로지 파크’.ⓒ이가영 기자
    ▲ 중국 베이징 북서부 하이뎬구에 자리한 ‘샤오미 베이징 테크놀로지 파크’.ⓒ이가영 기자
    중국의 기술 자립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반도체, 전기차,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 등 첨단 산업 전반에서 자국 기술 개발이 가속화되며 글로벌 공급망의 판도가 급속히 바뀌는 추세다. 한때 세계의 ‘조립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이 이제 대표적인 주문자생산(OEM) 국가에서 혁신을 이끄는 기술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시장에서 각광받는 삼성전자가 유독 중국에서만 고전하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뉴데일리는 중국 베이징 현지는 물론 샤오미의 전기차 공장과 연구시설, 본사 캠퍼스를 탐방하고 중국 기술 굴기의 현주소를 직접 확인해봤다. [편집자주]

    중국 베이징 북서부 하이뎬구에 자리한 ‘샤오미 베이징 테크놀로지 파크(이하 캠퍼스)’는 샤오미 본사이자 핵심 조직이 모여 있는 중심 캠퍼스다. 하이뎬구는 베이징의 대표적인 기술·교육 중심지로 인근에 바이두, 레노버 등 다른 정보기술(IT) 기업의 산업 단지도 자리한다.  

    8개 동 건물로 구성된 캠퍼스에는 140개 연구실이 들어서 있다. 샤오미는 2023년 기준 전 세계에서 500개 이상의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약 30%가 이 곳에 집중돼 있다. 2016년부터 구축해 2019년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총 1만 2000㎡(약 3600평) 규모로, 연구 장비에만 9800만 달러(한화 약 1437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이같은 인프라를 기반으로 샤오미는 5G, 고속 충전, 오디오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만들어가고 있다. 샤오미가 지금까지 취득한 특허는 스마트 모바일 기기, 전기차, 스마트 가전 등 총 4만 2000건 이상이다.

    이날 샤오미가 운영하는 대표 3개 연구실을 직접 찾아 기술 개발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생산 공정에 이어 로봇과 인공지능(AI) 등 최첨단 기술로 이뤄지는 연구개발(R&D) 과정은 중국의 기술 굴기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 ▲ 샤오미의 전자파 연구실에 자리한 로봇팔ⓒ샤오미
    ▲ 샤오미의 전자파 연구실에 자리한 로봇팔ⓒ샤오미
    관계자만 출입 가능 하다는 하얀색 복도를 지나 가장 먼저 마주한 곳은 카메라 연구실이었다. 문을 열자 빛과 소음을 완전히 차단한 밀폐된 공간이 드러났다. 외부에서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다른 연구실과 달리, 광원과 반사광 등을 통제하기 위해 창문 하나 없이 밀폐된 구조였다. 중앙에는 촬영 테스트 차트가 세워져 있었고, 그 앞에서는 로봇팔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동으로 카메라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레일 형태의 촬영 장비와 보조 조명 패널이 양쪽에 설치돼 있다. 엔지니어가 스마트폰을 장비에 올려놓기만 하면 자동으로 촬영이 시작되고, 장비들이 거리·조명·색온도를 바꾸며 동일한 장면을 반복 측정한다. 사람의 손을 거의 쓰지 않고 자동화된 장비가 촬영과 측정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카메라 품질을 점검하는 연구 환경이었다. 

    또한 전 세계 어디서든 시스템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가 유럽에 있더라도 프로그램이나 컴퓨터를 통해 연구실의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카메라 기능 비중이 커짐에 따라 최첨단 실험 환경을 구축했다는게 샤오미의 설명이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전자파 흡수율(SAR)’ 테스트가 이뤄지는 전자파 연구실이다.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사용할 때 실제 신체가 전자파를 얼마나 흡수하는지를 측정한다. 샤오미 연구원은 “국제적으로 허용되는 SAR 한도는 2.0 W/kg이지만, 샤오미는 더욱 엄격한 내부 기준치 1.0 W/kg을 적용해 안전성과 성능 수준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노란색 인체 머리 모형이다. 팬텀(Phantom)이라고 불리는 이 모형에는 인체와 유사한 액체가 채워져있다. 시험 전 스마트폰을 팬텀의 귀 부분에 가까이 두고, 시험이 시작되면 고정밀 측정 센서가 액체 내부 약 1000개의 측정 지점을 통해 흡수량을 기록한다. 수집된 데이터는 컴퓨터로 전송되며, 전체 과정은 약 10초면 완료된다. 

    보다 정밀한 결과를 위해 SAR 측정용 자동화 시스템 DASY(Dosimetric Assessment System) 시스템도 활용한다. 다관절 구조의 로봇팔이 정밀하게 움직이며 고정밀 측정 센서로 전자파 흡수율을 스캔한다. 측정 속도는 기본 보다 조금 더 걸리지만 훨씬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모든 측정은 자동화된 로봇이 정해진 좌표를 따라 이동하며 수행한다. 사람이 직접 장비를 움직이면 오차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 ▲ 샤오미 연구실 벽면에 자리한 주요 특허.ⓒ샤오미
    ▲ 샤오미 연구실 벽면에 자리한 주요 특허.ⓒ샤오미
    세 번째로 방문한 버추얼 네트워크 연구실(Virtual Net Lab)은 퀄컴과 공동 구축한 곳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복잡했다. 공간 가득 검정색 철제 선반에 기지국 장비와 단말기 등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고, 뒤편으로는 굵기와 색이 조금씩 다른 전선 묶음이 여러 줄로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연구실은 실제 통신망 환경을 가상으로 재현해 전 세계 어디서든 동일한 품질의 연결성을 시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내부에는 에릭슨·노키아 등 글로벌 통신장비 108세트가 설치돼 있고, 3G·4G·5G는 물론 VoWiFi(와이파이 음성통화) 환경까지 지원한다.

    예컨대 샤오미 제품에 한국의 SKT, LG유플러스, KT 통신사 심(SIM) 카드를 넣으면 복제된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화면에는 해당 사업자명이 표시된다. 해당 통신망을 사용하는 것 처럼 사용할 수 있으며, 최대 전 세계 100개 이상의 통신사 네트워크를 복제할 수 있다. 네트워크에 연결하기 전 전체 테스트의 80% 이상을 미리 끝내고, 나머지는 실제 통신망에서 최종 확인한다. 

    이 기술은 스마트폰뿐 아니라 커넥티드카 시험에도 쓰인다. 차량용 모듈이나 키박스를 연결해 실제로 차가 통신망에 접속하는 상황을 똑같이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현재까지 샤오미는 40개국 80여 개 통신사의 네트워크를 복제해, 기기 간 연결성과 호환성을 폭넓게 검증하고 있다. 

    버추얼 네트워크 연구실은 샤오미가 외부 기술 기업들과 구축한 기술 협력 생태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샤오미는 삼성·퀄컴 등 글로벌 기업과 공동 연구를 수행해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일례로 삼성과는 중국 선전시에서 램(RAM)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 기술 개발이 빨라지면서 단일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기술 개발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철학은 제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라이카(Leica)와 협력해 카메라 성능을 끌어올리고 보스(BOSE)와 협력해 스마트폰에 서브 우퍼를 탑재하는 식이다. 
  • ▲ 샤오미가 오디오 브랜드 보스(BOSE)와의 협력으로 출시한 '레드미(Redmi) K90 프로 맥스'.기존의 좌·우 스테레오 스피커에 더해 후면에 서브우퍼 역할을 하는 저음 전용 스피커가 추가돼있다.ⓒ이가영 기자
    ▲ 샤오미가 오디오 브랜드 보스(BOSE)와의 협력으로 출시한 '레드미(Redmi) K90 프로 맥스'.기존의 좌·우 스테레오 스피커에 더해 후면에 서브우퍼 역할을 하는 저음 전용 스피커가 추가돼있다.ⓒ이가영 기자
    이날 둘러본 샤오미의 연구실은 단일 기업의 연구시설이라기보다 중국 제조업의 혁신 방식 자체를 압축해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실험 대부분을 로봇이 대신하고, 글로벌 네트워크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며, 세계 주요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고 발전시키는 구조였다. ‘모방형’에서 ‘창조형’으로 전환 중인 중국 기술 산업의 현재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사람, 즉 인재가 있다. 캠퍼스 곳곳에서 마주한 20~30대 젊은 엔지니어와 직원들은 샤오미 기술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힌다. 샤오미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도전하고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성과에 따른 보상이 명확히 주어지는 체계를 구축했다. 성과가 보상으로 이어지고, 보상이 다시 혁신으로 이뤄지는 구조다. 이 같은 선순환은 샤오미의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