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AI 칩 등장에 주문형 반도체 시장 급성장 전망美 73조·中 70조·日 27조 등 보조금 경쟁 '점입가경'韓, 특별법 추진에도 인력·규제 걸림돌 … 점유율 하락 경고
  • ▲ 반도체 클린룸 전경ⓒ삼성전자
    ▲ 반도체 클린룸 전경ⓒ삼성전자
    AI 확산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뒤흔들면서 경쟁의 축이 기업 간 기술전에서 국가 단위 인프라 전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엔비디아 중심 체제가 흔들리는 사이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국은 천문학적 보조금과 제조 인프라 투자를 앞세워 AI 반도체 패권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 기술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제도·지원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며 성장세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7일 모건스탠리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ASIC(주문형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4년 120억 달러에서 2027년 300억 달러로 확대돼 연평균 3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AI 반도체 시장에서 ASIC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11%에서 2030년 15%까지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엔비디아 의존도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선택지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구글은 그동안 내부용으로만 사용해온 AI 전용칩 TPU의 외부 공급을 검토 중이다. 앤스로픽, 메타 등 주요 AI 기업들이 TPU 도입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AI 칩 시장의 다각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자체 ASIC 개발에 나서며 GPU 중심 구조의 균열은 더욱 뚜렷해지는 분위기다.

    설계 경쟁이 확산될수록 병목은 제조와 패키징에서 발생하고 있다. 일본은 라피더스를 앞세워 2027년 2나노 공정 양산을 목표로 전력·용수 등 인프라까지 정부가 직접 확보하는 방식으로 제조 주도권 회복에 나섰다. 소니·도요타·소프트뱅크 등이 참여한 연합체에 기존 1조7000억엔에 이어 1조1800억엔을 추가 지원하며 누적 2조9000억엔, 약 27조원 규모의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중국은 2014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총 3400억 위안을 반도체 생태계 육성에 투입했다. 최대 파운드리 SMIC는 자국 내 AI 칩 사용 의무화 정책에 힘입어 공장 가동률이 95%를 넘겼다. 화웨이를 중심으로 반도체 국산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중국의 지원금 총액은 70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미국 역시 2022년 칩스법을 통해 향후 5년간 390억 달러의 제조 보조금과 110억 달러의 R&D 예산, 25% 세액공제를 포함한 강력한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하며 직접 지원 규모만 73조원을 넘어섰다.
  • ▲ 반도체 패권을 두고 글로벌 주요국들의 보조금 경쟁이 치열하다ⓒ연합뉴스
    ▲ 반도체 패권을 두고 글로벌 주요국들의 보조금 경쟁이 치열하다ⓒ연합뉴스
    2년 뒤 韓 반도체 경쟁력 따라잡힌다

    이 같은 정부 주도 경쟁은 생산 점유율 전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미쓰이글로벌전략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첨단 반도체 주도권 경쟁'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23년 글로벌 첨단 반도체 생산 점유율 12%로 미국과 공동 2위였지만, 2027년엔 미국이 17%까지 확대하는 반면 한국은 13%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치며 3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됐다. 국가 단위의 지원 속도와 규모에서 이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역시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26일 ISSCC(국제고체회로학회) 2026 기자 간담회에서 공개된 한국 연구진과 기업들의 발표는 메모리 중심 국가에서 시스템 반도체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고대역폭 전송·저전력 메모리·첨단 패키징 기술을 잇달아 내놓으며 AI 가속기 생태계에 맞춘 기술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서고 있다. HBM4의 초고대역폭·고용량 구현, GDDR7과 LPDDR6의 전력 효율 개선 등은 AI 서버 요구 조건과 직결되는 요소로 평가된다.

    다만 산업 환경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크다. 한국도 반도체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원하기 위한 '반도체 특별법' 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핵심 쟁점이던 '주52시간제 적용 예외'는 포함되지 않는 방향으로 조율되면서 경쟁국 대비 노동·인프라 유연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다. 법안이 연내 본회의를 통과하면 대통령 소속 국가반도체위원회가 설치되고, 정부는 5년마다 반도체 산업 지원 기본계획을 수립해 재정·행정 지원을 제공하게 된다. 중소·중견기업 대상 R&D 인력 지원과 별도 반도체 기금 조성도 포함됐다.

    글로벌 AI 인프라 경쟁이 국가 대항전으로 전환하는 가운데 한국의 대응 속도는 더 늦춰질 여유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산업계는 HBM 기술력을 기반으로 메모리·파운드리·첨단 패키징을 결합한 '제조 플랫폼 국가'로 진화하지 못할 경우 생산 점유율뿐 아니라 AI 생태계 주도권에서도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은 부품 공급을 넘어 AI 인프라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제조 플랫폼으로 도약해야 한다"며 "국가 지원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술 경쟁력만으로는 세계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