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붕괴 원인, 정부도 '구조 문제' 인식수가·책임·응급체계·건보 우선순위, 따로 떼면 해법 없다탈모약 급여 확대 아니라 중증·암환자 치료 접근성 확보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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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 ⓒ정상윤 기자
지난 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필수의료와 의료인력 문제를 두고 "의사를 늘리는 것만으로 해결이 되겠느냐", "원인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이에 정은경 장관은 낮은 보상과 높은 의료사고 위험, 지속 불가능한 근무 구조를 필수의료 붕괴의 핵심 원인으로 짚었다. 필수의료 위기의 본질이 숫자가 아니라 구조에 있다는 문제 인식은 정부 최고 책임자 수준에서 공유된 것이다.그러나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이를 실제로 해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다. 필수의료 수가 조정, 의료사고 책임 구조 개편, 응급의료 체계 재설계, 건강보험 재정의 우선순위 재정립은 개별 정책이 아니라 서로 맞물린 하나의 구조적 문제다. 어느 하나만 분리해 접근할 경우, 현장의 붕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정책 논의는 종종 분절된 채 진행돼 왔다. 탈모 치료제 급여화와 같은 선택적 급여 확대 이슈가 필수의료의 구조적 위기보다 앞서 논의되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이 과정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중증질환자와 암환자의 치료 접근성은 뒷순위로 밀렸다.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대표)는 최근 본보와 만나 중증질환자 당사자의 시선에서 현재의 의료개혁 논의를 다시 짚었다. 새로운 요구를 던지기보다 이미 드러난 원인 앞에서 왜 실행이 지연되고 있는지를 물었다.김성주 회장은 "(업무보고 당시) 필수의료 문제 해결에 대한 방향은 분명해졌지만 환자가 체감하는 변화는 여전히 멀다"고 말했다. 정책 문서와 발언 속에서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고 있지만 중증질환자가 마주하는 현실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그는 "중증질환자에게 의료개혁은 단계적 과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음 협의체, 다음 법 개정, 다음 예산 연도를 전제로 한 논의는 환자에게 실질적인 답이 될 수 없다"며 "중증질환자는 오늘 치료를 받지 못하면 내일이 없을 수 있다. 정책의 속도와 생존의 속도는 다르다"고 말했다.즉, 중증·필수·응급 의료를 일반 진료와 같은 틀에서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무너진 것은 수익 구조가 아니라 지속가능성 자체"라며 "명확한 우선 투자와 집중 보상이 필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명확한 건보 우선순위 확립 … 안정된 의료 생태계 조성특히 대통령 언급으로 사회적 이슈로 확장된 탈모·비만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 검토에 대해서는 "사회적 요구를 이해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건강보험의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 회장은 "건강보험의 최우선 가치는 생명을 지키는 중증·필수의료에 있어야 한다"며 "선택적 급여 확대가 중증질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흔드는 방식으로 추진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탈모약보다 생존이 우선'이라는 말은 그 점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응급실을 둘러싼 혼란에 대해서도 그는 구조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응급실 '뺑뺑이'는 의료진의 판단이나 병원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받아도 감당할 수 없는 의료 시스템이 만든 결과라는 것이다.김 회장은 "중증응급환자를 받는 순간 병원과 의료진이 떠안아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며 "인력은 부족하고 보상은 낮으며 의료사고 위험은 과도한데 이런 구조에서 응급실이 정상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했다.의료사고 책임 구조에 대해서는 보다 직접적인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김 회장은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에게 모든 법적·재정적 위험을 개인이 떠안도록 하는 구조에서는 어떤 인력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책임보험 도입과 고액 배상에 대한 국가 부담 논의가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이 문제는 의료진 보호를 넘어, 중증질환자와 암환자가 치료받을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고 강조했다.지역의사·공공의사 정책에 대해서도 김 회장은 구조 개편 없는 인력 확충의 한계를 짚었다. 그는 "사람을 데려오는 정책보다, 사람이 남아 있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며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인력은 다시 떠난다"고 말했다.김 회장은 "고착화된 여러 문제에서 비롯된 필수의료 붕괴 원인은 이미 파악됐으므로 이제 환자를 살리는 방법을 구체화해야 한다. 당장 실행할 방법을 모색해야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