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 급여화 의제 앞에서 '주춤' 대국민 설득 기반 실종 반복되는 증원 성토가 '밥그릇 프레임'으로 번역되는 이유전문가 단체 신뢰는 반대의 크기가 아니라 대응의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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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생성이미지
8일 오전 2026년 의료계 하례회가 열린다. 의대증원 권한을 쥔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하는 가운데 의사 수 추계에 대한 비판과 정책 반대 성토가 이어질 전망이다. 예측 가능한 모습이다. 이 장면이 반복될수록 의사들의 목소리와 사회적 분위기 사이 간극은 더 벌어지고 있다.의대증원 수치의 근거 부족을 주장하는 논리가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수련 환경의 밀도, 의료 안전, 필수의료의 지속 가능성은 실제 현장을 떠받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증원 문제가 논의의 출발점이 될 때마다 의료계는 비슷한 위치에 서게 된다. 설명을 요구받는 쪽, 방어해야 하는 쪽이다. 그리고 이 구도는 빠르게 '밥그릇'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이 번역이 늘 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전혀 근거 없는 오해라고만 치부하기도 힘들다. 사회가 의사단체를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이익집단으로 먼저 인식하게 된 과정에는 의료계 스스로의 선택도 겹쳐 있다. 그 지점을 떠올리게 하는 사례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탈모 급여다.탈모 급여는 미용이냐 질병이냐의 단순한 논쟁이 아니다. 건강보험 급여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 경증 질환의 경계는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 제한된 재정을 어떤 환자군에 먼저 쓰는 것이 사회적으로 납득 가능한지라는 질문을 함께 품고 있다. 일단 복지부는 정치적 구호에 힘을 실어줬다. 의료계는 과학과 재정의 언어로 맞서야 했지만 사실상 침묵 중이다.이 사안은 의료계가 이해당사자가 아니라 여론 앞에 전문가로 설 수 있었던 드문 기회였다. 의대증원은 구조적으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린다. 어떤 논리를 내놓더라도 '자기 문제'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 탈모 급여는 의료계의 생존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여론의 반발을 감수하면서도 원칙을 설명할 수 있는 자리였다.급여의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 어디까지를 공적 보험이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 차분히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증원 논쟁처럼 즉각적인 방어 태세에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전문가 집단이 불리한 선택을 감수하며 공공성을 말할 수 있는 시험대에 가까웠다.그러나 탈모 급여 논의 과정에서 의료계의 대응은 조심스럽다. 반대 입장은 있었지만 기준을 세우는 설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 사이 복지부는 속도를 냈고 의료계는 상황을 따라가는 쪽이 됐다. 급여의 원칙을 둘러싼 질문은 논쟁의 중심으로 올라서지 못했다. 증원이라는 더 크고 불편한 장벽이 앞에 놓이자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다.만약 탈모 급여처럼 여론 부담이 큰 사안에서 의료계가 먼저 기준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왜 곤란한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차분히 풀어냈다면 논쟁의 좌표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 순간 의료계는 이익을 위해 정책을 반대하는 집단이 아니라 기준을 제시하는 집단으로 인식된다. 설득은 이런 사소한 장면에서 축적된다.하례회는 해마다 반복된다. 박수와 성토, 익숙한 구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이 지나며 남는 것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다. 반대의 크기보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사회 앞에 어떤 원칙을 먼저 보여줬는지가 신뢰의 무게를 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