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쌓이고 가격 무너져 … 철강사들 철근 생산 조기 종료중국발 공급과잉에 美·EU 보호무역 … 내년 수출 전망 우울'K-스틸법' 발판 삼아 체질 전환 … 해외·고부가로 승부수
  • ▲ 수출 앞둔 철강ⓒ연합뉴스
    ▲ 수출 앞둔 철강ⓒ연합뉴스
    국내 철강업계가 연말을 앞두고 잇따라 철근 생산을 중단하거나 감축하며 사실상 올해 생산을 조기 마무리하고 있다. 재고 누적과 가격 급락 속에서 추가 생산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업계는 내년 사업을 대비해 해외 중심의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정면 돌파에 나섰고, 정부도 ‘K-스틸법’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26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동국제강은 인천공장의 철근 생산을 지난 22일부터 연말까지 중단한다. 남은 기간에는 포항공장에서만 철근을 소량 생산할 계획이다. 연간 220만t 규모로 국내 최대 철근 생산기지인 인천공장이 멈춘 것은 지난 7~8월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창사 이래 이례적인 일이다. 동국제강 측은 내년에도 가격 회복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연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현대제철 인천공장 역시 내수용 철근 생산을 마무리했다. 수출용 물량만 당진공장에서만 생산한다. 대한제강은 주 3~4일만 가동하며 철근 생산을 조절하고 있다. 와이케이스틸, 환영철강, 한국철강 등 철강사들도 가동 일정을 조정하며 생산 감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철근 재고 누적과 가격 하락이 진행된 데 따른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철근(SD400·10㎜) 시장 평균가격은 t당 66만원 수준으로, 기준가격(92만2000원) 대비 26만원 이상 낮다. 업계에서는 최소 t당 70만원 이상은 돼야 정상적인 영업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재 가격 수준에서는 팔수록 t당 10만원가량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라며 “내년에도 가격이 70만원 이하에 머물 경우 생산 중단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철강산업 전반을 둘러싼 대외 환경도 녹록지 않다. 중국발 공급 과잉에 더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철강 수입 규제 등이 강화되면서 수출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는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와 EU의 철강 수입 쿼터(TRQ) 영향으로 내년 철강 수출이 올해보다 2.1%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 ‘K-스틸법’이 통과됐다. 정부와 업계는 ‘K-스틸법’을 발판 삼아 범용 철강 중심의 생산 구조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저탄소 제품 중심으로 산업 방향을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용 고급 강판과 에너지·방산 분야 특수강을 전략 품목으로 육성하고, 탄소 감축 기술을 새로운 경쟁력으로 삼아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또 올해부터 중국산 철강재 등을 포함한 해외 철강제품에 대해 30%대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내년부터 국내로 수입·유통되는 철강재는 수입 신고 단계에서 품질검사증명서(MTC) 제출을 의무화해 우회덤핑도 차단할 방침이다. 

    철강사들도 해외 거점 확보와 조직개편을 통해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는 인도·미국 등 해외 투자 사업을 담당하는 전략투자본부를 신설했고, 동국제강그룹 동국씨엠은 글로벌영업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세아그룹 역시 최근 임원 인사에서 해외 사업 안정화에 초점을 맞췄다.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연산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곳 제철소는 열연 및 냉연도금 판재류를 공급할 예정이다. 2029년부터 상업 생산에 들어가면 미국의 철강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 뿐 아니라 탄소 규제에도 적극 대응할 수 있다. 포스코그룹도 이곳 전기로 제철소의 20% 지분을 확보해 투자하며 미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불황은 단순한 경기 조정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국면”이라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