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질환 기준 확대·해외 임상 인정 … '검증 전 치료' 구체화정부주도 임상연구·규제샌드박스 확대, 책임 주체는 여전히 공백"중증질환자는 실험 대상 아니다" … 환자단체, 안전망 선행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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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생성이미지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첨단재생의료 규제 완화의 취지는 분명하다. 기존 치료로 더 이상 방법이 없는 중증질환자와 암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내놓은 제도 개선 방향을 들여다보면 이 취지가 치료 기회 확대가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치료의 조기 허용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제2차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 후속조치로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 활성화 및 치료 실시 촉진을 위한 규제 개선 방안을 마련해 정책위원회에 보고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를 '치료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환자 안전과 책임 구조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이번 개선안의 핵심 중 하나는 난치질환 기준의 구체화다. 복지부는 질환명을 나열하는 방식 대신 치료 필요성을 개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해 연구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했다.문제는 이 기준이 실제로는 난치질환의 범위를 과도하게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퇴행성 관절염, 만성통증 등 환자 수요가 많은 질환까지 포함될 경우, 사실상 다수의 비중증 질환이 첨단재생의료 치료 대상이 될 수 있다.특히 난치질환에 대해 임상연구 이후 의료기관이 비용을 받고 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열어둔 구조는, 중증환자 보호를 위한 제도가 '검증 전 치료의 시장화'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중증질환자를 위한 예외적 제도가 일반 질환까지 흡수하는 순간, 환자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실험 대상이 된다"고 지적했다.실제 복지부는 해외 원정치료 수요와 미충족 의료 수요를 이유로 정부주도 임상연구 추진을 예고했다. 2026년부터 퇴행성 관절염, 만성통증 등을 대상으로 자가 줄기·면역세포 치료의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하는 다기관 임상연구를 공모하겠다는 계획이다.그러나 환자 수요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직접 임상연구를 기획·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미 국내에는 카티스템, 이뮨셀엘씨 등 정식 식약처 허가를 거쳐 개발된 첨단재생 치료제 사례가 존재한다. '일본으로 환자들이 간다'는 주장 역시 구체적인 통계와 근거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김 대표는 "환자의 절박함이 정책 추진의 명분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며 "치료 기회 확대와 검증되지 않은 치료 허용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외 임상자료 인정 … 일본식 '자유진료'의 그림자이번 제도 개선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해외 임상연구·임상시험 결과를 국내 첨단재생의료 치료 승인 요건으로 폭넓게 인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일본의 재생의료 연구 결과를 국내 치료계획 심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일본은 자유진료 체계 하에서 병원 내부 보고와 정부 신고만으로 의사 재량 시술이 가능하고, 정부의 실질적 관리·감독은 제한적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수행된 연구를 근거로 국내 치료를 허용하는 것은 환자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효과가 있다면 정식 식약처 허가를 거쳐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상연구' 또는 '연구자 치료'라는 이름으로 환자에게 치료를 제공하는 구조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제도 개선 논의 전반에서 눈에 띄는 공백은 치료로 인한 피해 발생 시 책임 주체에 대한 명확한 설계가 없다는 점이다. 식약처 승인 없이 치료가 이뤄질 경우, 환자 피해를 누가 어떻게 보상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찾아보기 어렵다.김 회장은 "치료 기회를 넓히는 정책과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허용하는 정책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중증질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치료가 아니라 안전성이 보장된 검증된 치료"라고 재차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