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일섭 회장-故허영섭 회장 아들 은철-용준 공동경영체제허 회장 장남 진성, 홀딩스 CFO … 차남 진훈, 녹십자 팀장 선임허 회장 지분 증여시 지배력 강화 … '경영권 분쟁 없는' 사촌경영 전환 주목
  • ▲ 허일섭 GC녹십자그룹 회장. ⓒGC녹십자
    ▲ 허일섭 GC녹십자그룹 회장. ⓒGC녹십자
    녹십자홀딩스의 지분구조가 서서히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분율 변화 자체는 크지 않지만, 1954년생 말띠인 허일섭 회장이 다시 말의 해를 맞은 가운데 3세 경영으로의 세대교체에 속도가 붙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2017년 이후 '숙부-조카 경영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만큼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난 갈등은 없지만, 지배구조를 둘러싼 긴장감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2일 녹십자홀딩스가 최근 공시한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변동신고서에 따르면 허일섭 회장의 지분율은 12.28%로, 2015년 11.51%에서 0.77%p 늘리면서 최대주주 자리를 굳혔다.

    녹십자그룹은 1961년 설립된 한일시멘트 창업주 故 허채경 회장이 그의 둘째 아들 故 허영섭 회장과 함께 발전시킨 기업이다. 2009년 허영섭 회장이 타계하면서 허채경 회장 다섯 아들 중 막내인 허일섭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허영섭 회장 자녀 중에서는 허은철 녹십자 대표,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허일섭 회장의 경우 허진성 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본부장이 경영일선에 나섰으며 허진훈 녹십자 알리글로팀장은 경영수업이 한창이다.

    애초 숙부인 허일섭 회장이 허은철·용준 대표 형제에게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사촌인 허진성·진훈 형제가 그룹 내 경영 요직에 앉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허진성 본부장의 경우 그동안 녹십자의 핵심 사업인 북미 시장 진출에 적극 개입한 데 이어 2024년 말부터는 녹십자홀딩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까지 맡게 되면서 그룹 내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 자리는 과거 허용준 대표가 대표에 오르기 직전 맡았던 핵심 요직으로, 그룹의 투자와 재무·회계를 총괄한다.

    허진훈 팀장도 그룹 핵심수입원인 면역글로불린 혈액제제 '알리글로' 해외사업을 주도하면서 경영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다. 1991년생의 어린 나이로 아직 임원에 오르지는 못했다.

    여기에 허일섭 회장도 내년 3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데다 지분을 꾸준히 확보하면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허진성·진훈 형제가 경영권 승계가 가능한 나이가 될 때까지 그룹 경영권을 쥐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당장 갈등 조짐은 없지만, 만 72세가 된 허일섭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경우 지분을 아들들에게 어떻게 물려주느냐가 관건이다.

    허진성 본부장의 경우 최근 10년간 보유주식을 19만1623주에서 36만4757주로 90.3% 늘렸고, 허진훈 팀장은 16만8355주에서 33만9355주로 101% 확보했다. 현재 지분율은 허 본부장 0.77%, 허 팀장 0.72%로 미미하지만 부친인 허일섭 회장의 지분을 증여받으면 사촌형들보다 많아질 수도 있다.

    허은철 대표와 허용준 대표도 같은 기간 보유주식을 각각 7.59%, 15.2% 늘렸지만, 지분율은 2.68%(+0.19%p), 2.91%(+0.34%p)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간 허일섭 회장 일가와 허영섭 회장 일가가 그룹 계열사를 분리해 경영해오지 않으면서 후계 구도를 뚜렷하게 정하지 않았던 데다 허진성·진훈 형제가 허은철·용준 형제보다 그룹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구도인 만큼 '사촌경영'에 앞서 경영권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 ▲ GC녹집가그룹 오너가 현황. ⓒ뉴데일리
    ▲ GC녹집가그룹 오너가 현황. ⓒ뉴데일리
    허일섭 회장이 형인 허영섭 회장의 전례를 따라 그룹의 공익재단에 지분을 기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창업주 아들인 허은철·용준 형제의 지분율이 2%대에 불과한 것은 허영섭 회장이 대부분 주식을 연구재단과 장학재단에 기부했기 때문이다. 허영섭 회장은 숙환으로 2009년 타계했고, 당시 가치로 673억원 상당의 지분을 연구재단과 장학재단에 기부했다.

    일각에서는 향후 녹십자그룹의 경영상황에서 결정적 변수는 이 연구재단과 장학재단들의 의결권 행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소유주식변동신고서를 보면 목암생명과학연구소 8.72%, 미래나눔재단 4.38%, 목암과학장학재단 2.10% 등 총 15.20%를 보유하고 있다. 허일섭 회장 일가 지분(14.04%, 장녀 허진영 지분 0.27% 포함)을 소폭 넘어서는 것으로, 의결권의 무게감이 적지 않다.

    공정거래법 제25조에 따르면 공익법인은 국내 상장법인의 주주총회에서 △임원의 선임 또는 해임 △정관 변경 △합병 및 주요 영업자산의 양도와 관련된 결의에서 특수관계인 합산 15%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재 목암생명과학연구소의 대표는 허일섭 회장이지만 허은철 대표가 이사로 들어가 있으며 미래나눔재단은 허용준 대표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또 목암과학장학재단의 대표이사를 허은철 대표가 맡으면서 경영권을 방어하는 모양새다.

    공익재단뿐만 아니라 GC녹십자그룹과 뿌리를 같이하는 한일시멘트그룹을 비롯해 기타 방계가족의 합산지분 약 8.78%와 국민연금이 들고 있는 6.04%도 변수로 꼽힌다.

    결국 그룹 경영권을 놓고 불안정한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20년에 가까운 나이 차 때문에 아직 완전한 사촌경영체제로의 전환 역시 이르다는 시선이 있다"며 "앞서 한미약품 사태를 보듯 경영권 분쟁은 회사 이미지와 경영에 영향을 끼치는 사안인 만큼 간단히 정리될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