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인 줄 알았는데 … 2주 이상 지속되는 피로·발열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진화하는 표적·면역 치료제, 최대 변수는 면역 저하로 인한 '감염'"지켜봐도 된다" 금물 … 치료 가로막는 제도적 공백 개선 목소리
  • ▲ 2021 부산국제영화제(BIFF) 레드카펫에 행사에 참여했던 故 안성기 배우의 모습.ⓒ뉴데일리DB
    ▲ 2021 부산국제영화제(BIFF) 레드카펫에 행사에 참여했던 故 안성기 배우의 모습.ⓒ뉴데일리DB
    국민 배우 안성기씨가 혈액암 투병 끝에 향년 74세로 5일 별세했다. 고인은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치료에 임해 한 차례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재발이 확인되며 긴 투병을 이어왔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복귀 의지를 보였던 만큼 그의 별세 소식은 사회 전반에 깊은 충격을 안겼고 동시에 '혈액암'이라는 질환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혈액암은 혈액과 골수, 림프계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을 통칭한다. 대표적으로 백혈병, 악성 림프종, 다발골수종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악성 림프종은 림프구가 암세포로 변해 전신에서 증식하는 질환이다. 

    혈액암의 가장 큰 특징은 초기 증상이 지나치게 일상적이라는 점이다. 피로감, 미열, 식욕 저하, 체중 감소는 과로나 감기 증상과 쉽게 겹친다. 코피가 잦아지거나 특별한 외상 없이 멍이 쉽게 생기고 오래 지속되는 증상, 잇몸 출혈이나 작은 상처에서도 피가 잘 멎지 않는 현상 역시 체질이나 노화로 오인되기 쉽다.

    림프종의 경우 목·겨드랑이·사타구니 등에서 림프절이 커질 수 있다. 통증이 거의 없고 서서히 커지는 경우가 많아 염증성 림프절 비대와 구분이 어렵다. 여기에 원인 불명의 발열, 야간 발한, 설명되지 않는 체중 감소가 동반된다면 질환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혈액암 진단에서 중요한 기준은 증상의 강도가 아니라 지속성이다. 며칠 쉬면 호전되는 피로나 감기 증상과 달리, 혈액암 관련 증상은 수주 이상 반복되거나 점진적으로 누적되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혈액종양내과 김대식 교수는 "혈액암은 증상이 가볍다고 안심하면 안 되는 질환이다. 원인 없이 체중이 줄거나 발열, 야간 발한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반드시 전문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피가 잦아지거나 멍이 쉽게 생기는 증상, 림프절이 줄어들지 않고 계속 커지는 경우도 혈액 검사에서 이상 신호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혈액암은 비교적 간단한 혈액 검사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는 질환이기도 하다. 문제는 증상이 애매하다는 이유로 검사 단계로 이어지지 않는 초기 구간이다. 이로 인해 진단 시점이 늦어지는 사례가 반복된다.

    ◆ 가장 무서운 적은 감염 그리고 속설

    혈액암 치료는 지난 수십 년간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다. 항암제와 표적치료제를 병용하는 면역화학요법이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재발·난치 환자에게는 조혈모세포이식이 중요한 치료 옵션으로 활용돼 왔다. 최근에는 CAR-T 세포치료제와 이중항체 등 혁신 치료제가 도입되며 생존 기간과 치료 성적도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치료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합병증은 여전히 감염이다. 

    김 교수는 "혈액암 치료 과정에서는 질환 자체와 항암 치료로 인해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다. 이로 인해 감염이 발생하면 패혈증으로 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혈액암 환자는 치료 중 폐렴이나 패혈증 등 중증 감염 위험에 상시 노출된다. 의료진은 예방적 항생제와 백혈구 촉진제 등을 사용하지만 감염은 여전히 치료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남아 있다.

    혈액암을 둘러싼 잘못된 인식 역시 치료 시기를 늦추는 요인이다. 대표적인 속설이 '나이가 많아 발생한 림프종은 진행이 느리니 지켜봐도 된다'는 주장이다. 일부 저위험 림프종에서 경과 관찰이 가능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림프종이 그런 특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림프종은 종류에 따라 진행 속도와 예후가 매우 다르다.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미루거나 경과 관찰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민간요법이나 건강식품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없으며, 항암 치료와 상호작용해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의 판단 없이 치료 시기를 놓치면, 이후 선택할 수 있는 치료 옵션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속설에 기대는 접근은 특히 경계해야 한다.

    ◆ "치료는 있는데 닿지 않는다" … 정책 토론회서 제기된 문제

    일상적 초기증상과 속설은 치료를 늦추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제도적 한계도 거론된다. 지난해 11월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 주최로 열린 혈액암·희귀암 치료 접근성 토론회에서는 혈액암 환자들이 진단 이후 치료 단계에서 마주하는 구조적 공백이 집중적으로 논의된 바 있다. 

    당시 토론회에서는 혈액암이 다른 암종에 비해 진행 속도가 빠르고 치료 시기 선택이 예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강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 도입 이후 실제 임상 적용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제도적 공백과 행정 절차로 인해 치료 시점이 지연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환자와 의료진, 전문가들은 "치료 옵션은 늘었지만, 환자가 제도 안에서 체감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혈액암의 특성을 고려한 보다 유연한 정책 설계와 환자 중심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 토론회 전반에서 공통된 결론으로 제시됐다.

    한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는 "혈액암에는 확실한 예방법이 없다. 바이러스 감염, 면역 이상,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될 뿐"이라며 "결국 최선의 대응은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반복되는 피로, 설명되지 않는 출혈과 멍, 지속되는 발열과 체중 감소는 결코 가볍게 넘길 증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