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전문기구 vs 韓 정부 주도 … 결정 구조부터 달라 다시 불붙는 '숫자 논쟁' … 의사인력 결정 방식이 쟁점의료정책연구소 "몇 명보다 어떻게 정하느냐가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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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달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결정이 예고되면서 의료계와 정부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의사인력 부족에 대한 문제의식은 공유되지만 증원 규모와 결정 방식, 정책 책임 구조를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또다시 '숫자 공방'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주요 선진국들은 의사 인력 정책의 초점을 단순한 인원 수 산정이 아닌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거버넌스 구축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증원의 필요성보다 ‘어떤 절차와 기준으로 결정하느냐’가 갈등을 최소화하는 핵심 변수라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최근 '주요국 보건의료인력 수급 계획 및 결정 과정 분석, 의사인력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통해 미국·일본·영국·네덜란드 등 주요국의 의사인력 수급 추계 및 결정 구조를 비교·분석했다. 연구책임자는 노준수 아주대 의대 교수다.

    보고서는 "주요 선진국들은 의사가 몇 명 필요한가라는 질문보다 그 규모를 누가 어떤 근거와 합의 절차를 통해 결정할 것인가에 정책의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별 제도는 다르지만, 의사인력 총량을 정하는 구조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전문가 주도의 독립성과 교육·수련 재정과의 연계다.

    네덜란드는 의사인력 수급 추계와 정원 권고 권한을 독립 전문가 기구인 '의료인력역량위원회(Capaciteitsorgaan)' 산하 위원회에 위임한다. 의료계, 교육계, 보험자 등이 동수로 참여하며 정부는 권고안을 대부분 수용하는 구조다. 정치적 판단 개입을 제도적으로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은 후생노동성 산하 '의사수급분과회'가 핵심 역할을 맡는다. 위원 22명 중 17명이 의사로 구성돼 있으며, 전문가 합의를 우선하는 운영 원칙을 유지한다. 중앙정부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논의 결과가 사실상 정책 초안으로 기능한다. 지역의사회가 참여하는 지역의료협의회는 지역별 의사 확보의 실행 기반 역할을 한다.

    미국은 의과대학 정원을 개별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하지만, 전공의 수련에 대한 연방정부 재정 지원 상한선이 간접적인 총량 조절 장치로 작동한다. 직접 통제 대신 재정을 통해 균형을 맞추는 방식이다.

    영국은 국가의료서비스(NHS)가 인력 계획을 주도하고, 재무부 승인 절차를 통해 예산과 정원을 직접 연동한다. 독일 역시 연방정부·주정부·의사단체 간 협의 구조를 통해 의사인력 규모를 결정한다.

    보고서는 "네덜란드,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 대부분 국가에서 의대 정원, 교육 예산, 수련 비용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있다"며 "의사 수만 떼어내 논의하는 구조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머릿수' 아닌 실제 근무량 기준

    의사인력 수급 추계 방식에서도 차이는 분명하다. 주요국들은 단순 인원 수가 아닌 전일제 환산 근무량(FTE)을 기준으로 실제 의료 제공 능력을 계산한다.

    네덜란드는 인구 변화, 질병 부담, 의료 수요, 기술 혁신, 근무 형태 변화 등 50여 개 변수를 반영한 시뮬레이션 모델을 활용한다.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근무시간 감소까지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영국, 호주 역시 다양한 정책 시나리오를 반영한 모델을 적용한다. 정부기관과 민간기구가 각각 수급 추계를 수행하거나 경쟁적으로 결과를 발표하는 구조도 유지된다. 추계에 사용된 데이터, 모형, 회의록을 공개해 투명성과 신뢰도를 확보하는 점 역시 공통된 특징이다.

    연구진은 한국의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가 실질적인 정책 도구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위상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 자문기구를 넘어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고, 정부가 권고안을 존중·수용하는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단순 인원 수 중심 논의에서 벗어나 실제 근무량(FTE),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성 변화를 반영한 정교한 시뮬레이션 모델 도입이 시급하다"며 "이를 위한 데이터 생성과 축적이 선행되지 않으면 증원 결정의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의사 인력 증원 결정 시 교육 예산, 수련 비용 지원, 필수의료 수가 가산 등이 자동으로 연동되는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정책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