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불균형' 이유? WPP, 조직 개편으로 효율성 제고AOR 모델 벗는 광고 업계… '애자일함' 무기 내세워
  • WPP 산하 오길비(Ogilvy)가 IBM의 차기 크리에이티브 대행사 선정 절차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면서, 32년에 걸친 양사의 파트너십이 막을 내리게 됐다. 장기 파트너십의 상징으로 꼽혀온 관계였던 만큼, 이번 결별은 변화하는 광고업계의 운영 구조와 맞물려 더욱 관심을 모은다.

    24일 브랜드리프 취재 결과, 양사의 파트너십은 지난 1994년 IBM이 5억 달러 규모의 광고 비즈니스를 오길비에 맡긴 이후 30년 넘게 이어져 왔다.

    당시 오길비는 전 세계 40개 이상의 대행사가 나눠 맡고 있던 IBM의 광고 업무를 총괄하게 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의 광고 계약 통합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았으며, 이후 오길비는 IBM의 브랜드 정체성 구축을 이끄는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양사는 'Solutions for a Small Planet', 'e-business', 'Smarter Planet', 'Watson', 'Think', 'Let's Create' 등 시대를 대표하는 캠페인을 함께 선보였다. 

    특히 'Solutions for a Small Planet'는 IBM을 단순한 기술 공급자가 아니라, 더욱 촘촘히 연결되는 세계에서 문제 해결을 돕는 파트너로 재정의했다. 세계화와 네트워크 연결성이 본격화하던 1990년대 중반의 시대정신을 '작은 행성'이라는 표현에 압축해 담아내며, IBM 브랜드가 지닌 폭넓은 공감대와 시대적 적합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 ▲ 일관성은 크리에이티브의 힘을 키운다. ⓒIPA
    ▲ 일관성은 크리에이티브의 힘을 키운다. ⓒIPA
    크리에이티비티 업계는 장기 파트너십의 가치를 높게 사고 있다. 2024년 IPA 이펙티브니스 데이터뱅크를 활용한 연구에서는 5년간 56개 브랜드, 4000여 편의 광고를 분석한 끝에 '크리에이티브 일관성 점수(CCS)'를 제시한 바 있다. 

    이 연구는 같은 에이전시와 오래 협업한 브랜드일수록 더 높은 크리에이티브 품질과 광고 식별성을 보인 반면,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를 자주 바꾸는 브랜드일수록 더 낮은 품질의 광고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IBM은 2022년 미국광고연맹(AAF) 광고 명예의 전당에 오른 최초의 B2B 브랜드가 되며, 장기간 축적된 브랜드 자산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다만 이번 결별의 배경에는 WPP와 IBM 사이에 오랫동안 누적된 'balance-of-trade issues', 즉 거래 조건과 수익성의 불균형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룹 전체의 운영 구조를 다시 따지는 과정에서 나온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 ▲ 일관성은 크리에이티브의 힘을 키운다. ⓒIPA
    이 같은 판단은 최근 WPP의 조직 재편 흐름과도 맞물린다. WPP는 오길비, VML, AKQA 등 주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를 'WPP Creative'라는 하나의 축 아래 묶고, 호가스(Hogarth)를 포함한 제작 역량은 'WPP Production'으로 통합했다. 개별 에이전시 단위의 분절된 운영보다, 그룹 차원에서 더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전통적인 AOR(Agency of Record) 모델과는 다른, 보다 애자일한 에이전시 형태가 부상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AKQA 창업자 출신인 아자즈 아메드(Ajaz Ahmed)는 최근 Studio.One을 설립하고, 이를 '다층적 구조를 가진 느리고 관료적인 대형 에이전시들의 직접적인 경쟁자'로 규정하며 더 빠르고 날렵한 방식의 캠페인 운영을 내세웠다.

    이매지너리프렌드(ImaginaryFriend) 역시 아담앤이브뉴욕(adam&eveNYC), R/GA, 옵저버토리(Observatory) 출신의 다니엘 본더(Daniel Bonder), 데이브 브라운(Dave Brown), 캐롤라인 도일(Caroline Doyle) 등이 공동 설립한 회사다. 인하우스 팀의 연장선에서 일하는 모델을 표방한다. 필요할 때마다 맞춤형 팀을 빠르게 꾸려 내부조직이 부족한 전략·크리에이티브 역량을 외부에서 보완하는 구조다.

    광고 업계의 한 전문가는 "계속된 경기 침체와 더불어 AI까지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대행사 모델은 사실상 끝났다'는 진단도 나온다"며 "수익성과 운영 효율을 둘러싼 재조정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향후 글로벌 광고 업계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와 조직 구조를 재편해 나갈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