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조3972억·영업이익 2773억원 반등에도 주총 전면에 선 것은 지배구조 논란소액주주 측 후보와 내부통제 강화 안건은 줄줄이 부결, 시장 의구심은 더 또렷해져
  • ▲ DB하이텍 주주총회ⓒDB하이텍
    ▲ DB하이텍 주주총회ⓒDB하이텍
    24일 DB하이텍 제73기 정기주주총회는 통상적인 반도체 회사 주총과는 결이 달랐다. 공고에 오른 안건만 봐도 재무제표 승인과 이사 선임을 넘어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정관 일부 변경, 법원검사인 선임 신청 권고까지 촘촘히 배치됐다. 

    특히 정관 변경 안건에는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와 상법 개정사항 반영, 공정거래 특별조사 신설, 내부거래위원회 신설이 함께 담겼다. 실적과 투자 계획을 점검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사회를 누가 감시하고 어떤 견제 장치를 둘 것인지를 놓고 힘겨루기가 벌어진 주총이었다.

    DB하이텍은 정정 공고에 첨부된 연결재무제표 기준 지난해 매출 1조3972억원, 영업이익 2773억원, 당기순이익 250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외형과 수익성이 모두 개선된 흐름이다. 지난해말 현금및현금성자산은 3231억원이었고, 관계기업투자는 1405억원으로 전년 37억원 수준에서 급증했다. 단기차입금은 2317억원, 장기차입금은 1026억원으로 늘었고 부채총계도 7504억원으로 전년 3962억원보다 커졌다. 실적은 살아났지만, 시장의 질문은 얼마나 벌었느냐보다 그 돈을 어디에 어떤 기준으로 쓰고 있느냐로 옮겨갔다.

    ◇반도체보다 감사위원 … 주총의 초점이 달라졌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제4호 의안이었다.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회사 측 후보 김재익씨와 주주제안 후보 이상목씨가 함께 올랐다. 공고상 DB하이텍 정관은 이사 수를 9인 이하로 두고 있어, 이미 선임된 이사 수를 감안하면 추가 선임은 1명만 가능했다. 이에 따라 두 후보는 일괄투표에 부쳐지고, 모두 결의 요건을 충족할 경우 다득표자를 선임하는 구조였다. 형식은 선임 안건이지만 실질은 이사회 견제력을 둘러싼 표 대결이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회사가 방어에 성공했다. 김재익 후보는 참석 주주 주식 수의 91.9% 찬성으로 선임됐고, 이상목 후보는 7.6%에 그쳐 부결됐다. 황철성·윤영목 사외이사의 감사위원 선임 안건도 각각 79.6%, 81.7% 찬성으로 가결됐다. 주주제안 안건인 공정거래 특별조사 신설은 4.1%, 내부거래위원회 신설은 25.4%, 법원검사인 선임 신청 권고는 4.1% 찬성에 머물렀다. 반면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는 99.5% 찬성으로 통과됐다. 숫자만 보면 회사 측 주도권이 유지된 주총이었지만, 주총의 중심 의제가 기술이 아니라 감사위와 내부통제였다는 사실은 별도의 메시지를 남겼다. 

    ◇주주들 “위장계열사 의결권부터 답하라” … 회사 “확정된 사안 아냐”

    실제 현장에서는 위장계열사 논란을 둘러싼 공방이 주총의 긴장도를 끌어올렸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가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을 지정자료 제출 부실과 관련해 검찰에 고발한 이후, 소액주주 측은 회사의 대응과 감사위원회의 감시 기능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주주 측은 DB그룹 총수 일가가 일부 회사를 실질 지배하면서 이를 통해 DB하이텍 지분을 보유하고 경영권 방어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제대로 견제 역할을 했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상목 소액주주 연대 액트 대표는 감사보고 직후 감사위원회가 최근 논란과 관련해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봐도 되느냐”고 물으며 감사위의 감시 기능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이에 배홍기 감사위원장은 “아직 정확한 내용이 나온 것 같지 않다”고 했고, 회사 측은 “법적으로 확정된 부분이 아무것도 없다”며 감사위원장이 답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공방은 제4호 의안 심의 과정에서 더 직접적으로 이어졌다. 이상목 대표는 자신이 사외이사 후보로 나선 이유에 대해 “공정위 보도자료에 수십 개의 증거가 나왔고, 지금의 이사회로는 견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또 위장계열사 관련 지분의 의결권을 자발적으로 제한할 의사가 있는지 답해달라고 요구했다. 주주 측은 공시 정정이 있었다면 자본시장법상 의결권 제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의결권 산정의 신뢰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회사 측은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한 사안은 지정자료 제출 부실에 관한 것이며, 주주들이 언급한 위장계열사 문제는 아직 법적으로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반복했다. 회사는 “하이텍 경영과 전혀 무관한 상황”이라며 법원 판단에 앞서 의결권 제한 여부까지 답하라는 요구는 부적절하다고 맞섰다. 의결권 제한 논란에 대해서도 회사 측은 관련 공시는 절차상 이슈에 따른 것이며, 검찰 조사와 법원 판단 이후에야 명확한 설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주주들이 법 위반 여부와 의결권 제한 필요성을 거듭 제기했지만, 회사는 “법을 위반한 부분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 ▲ 조기석 DB하이텍 대표ⓒDB하이텍
    ▲ 조기석 DB하이텍 대표ⓒDB하이텍
    ◇실적은 반등했는데 … 시장이 묻는 건 돈을 버는 능력보다 돈을 쓰는 방식

    시장의 시선이 더 차가운 이유는 자금 배분 구조에 있다. 실적이 반등한 만큼 원래라면 증설과 차세대 전력반도체 투자, 고객 기반 확대가 주총의 핵심 의제로 부상해야 했다. 그러나 재무제표상 관계기업투자 급증과 차입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시장은 본업 강화보다 자금이 어디에 묶이고 있는지를 더 들여다보는 분위기다. 단순히 돈을 잘 버는 기업이 아니라 벌어들인 돈을 어떤 원칙 아래 배분하고 있는 기업인지를 묻는 단계로 넘어간 셈이다.

    이번 DB하이텍 주총이 던진 질문도 결국 여기에 닿아 있다. 반도체 업황 반등과 전력반도체 기대, 기술 경쟁력 강화는 분명 긍정 신호다. 하지만 감사위원 선임과 내부거래 감시, 법원검사인 권고 여부가 주총의 핵심 의제로 올라왔다는 것은 회사가 아직 본업 경쟁력만으로 시장 신뢰를 충분히 회복하지 못했다는 뜻에 가깝다. 회사 입장에서는 표 대결에서 이겼지만, 시장의 의구심까지 걷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은 이제 환원 규모 자체보다 이사회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작동하는지, 늘어난 차입과 투자 자금이 실제 본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지, 회사가 자금 배분 원칙을 얼마나 납득 가능하게 설명하는지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