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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중 통화량이 8, 9월 두달 연속 2030조가 넘었다. 전년 대비 7% 이상 늘어난 것으로 2010년 이후 4년여만에 최고치의 증가율이다.

     

    아직 발표는 나지않았지만 한은의 추가 금리인하가 있었던 10월 통화량 역시 7% 이상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돈풀기에 한은이 금리 인하로 호응하면서 시중 자금은 풀릴 만큼 풀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돈이 돌지 않는다. 기업과 가계 모두 소비와 투자를 꺼리고 늘어난 돈을 재여놓고만 있다. 부동산 주식 은행 어디를 봐도 불안하다보니 일단 정거장같은 MMF에 돈이 몰린다.

     

    단기금융상품에 주로 투자하고 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MMF는 8, 9월 연속 60조~70조가 넘었다. 10월에도 한달새 10조원 가량의 자금이 순유입됐으며 결국 이달초 설정액이 5년만에 100조원대로 올라섰다.

     

  • ▲ ⓒ뉴데일리 DB
    ▲ ⓒ뉴데일리 DB

     

    8월 설비투자는 7월보다 10.1%나 줄어 2003년 1월에 기록한 -16.1%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고 9, 10월에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꽁꽁 언 소비심리는 도무지 풀리질 않고 있다.

     

    기업이 보유한 통화량은 1년전 보다 20조 이상이 늘어 500조가 훌쩍 넘었지만 투자에 나서지 않고 꼭 껴안고 있다. 12월 결산법인 616곳의 상반기 유보율은 1092.9%로 지난해 말보다 69.4%포인트 늘었다.

     

    대표적인 자금 흐름 지표인 통화승수도 계속 떨어지는 분위기다. 8월 통화승수는 18.7배로 2001년 12월 이후 가장 낮았고 이후에도 계속 19배 수준에 머물고 있다. 통화승수는 한국은행이 공급한 통화가 시중에서 몇 배의 통화를 창출하였는가를 나타내주는 지표로 20배 이하면 그만큼 돈이 잘 돌지 않는다는 의미다.

     

  • ▲ ⓒ뉴데일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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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국경제가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경제주체들이 불안감이나 불확실성을 이유로 늘어난 통화량을 현금으로 꽉 쥐고만 있어 재정과 통화정책 뿐만 아니라 부동산 정책 등도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얘기다.


    일부 전문가는 "돈을 공급해도 실물경제 수요가 없는 현 상황이 유동성 함정의 초입 단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하고 일부는 유동성 함정의 위기에 있다고 한다. 물론 한은은 공식적으로 유동성 함정 단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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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열 한은총재는 "통화정책 파급효과가 구조적인 요인에 의해 이전보다 약해졌을 수는 있다"면서도 "그래도 기준금리 인하의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경제가 정부의 재정·통화정책이 먹히지 않을 가능성을 열어둘 정도로 어렵다는 점이다. 경제주체들의 신뢰를 얻는 일관성 있는 정부의 정책과 대외리스크와 가계 부채 등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 우리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적인 변화 노력 등을 함께 꾀해야 할 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