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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제 지속으로 구속수감된 기업인들에 대한 선처론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특혜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사면이 아닌, 일정 형기 이상을 마친 기업인들에게 다른 수감자와 동일한 기회를 줘야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파렴치한 관행은 반드시 우리사회에서 차단돼야 하듯이, 유전중죄(有錢重罪) 역시 역차별 논란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정치권, 재계 안팎에서도 요건을 갖춘 기업인에 대한 가석방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특혜성 '특별 사면'이 아니라, 일정 형기를 채운 가석방 대상자이기 때문에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이역시 역차별이기 때문이다.
26일 현재 가석방 대상이 되는 기업인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등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은 수감 기간이 짧고, 아직 최종 판결이 나지 않아 가석방 대상자는 아니다. 특혜성 논란이 일 수 있는 '특별사면' 말고는 답이 없다. 정부 역시 반기업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혜 논란이 큰 이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추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기업인에 대한 가석방이 현실화 될 경우 가장 무게가 쏠리는 쪽은 단연 SK그룹 최태원 회장이다. 최 회장은 디스크 환자로 항상 통증을 동반하고 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695일째 복역 중이다. 확정 형기 중 3분의 1인 486일을 200여일을 초과해 가석방 요건은 이미 충족된 상황이다.
최 회장은 현재 모범수로 복역 중인데다 지난해 보수 187억원 전액을 사회적 기업과 출소자 자활 사업 등에 쓰도록 기부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월에는 옥중집필한 서적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출간하고 SK그룹 내 주요 이슈가 있을때마다 자필 편지를 보내 옥중에서도 회사를 직접 챙겨왔다.
그러나 총수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대규모 선제 투자나 일자리 창출과 같은 굵직한 그룹 사안들이 진척되지 않는 것은 물론 SK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 악화로까 이어졌다. 최 회장의 공백 초기에는 김창근 의장이 이끄는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총수의 빈자리를 메우는 듯 했지만 2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한계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수펙스가 일상적인 그룹의 업무를 진행하는데는 무리가 없지만 대규모 투자나 사업의 큰 방향을 잡는 등 큰 그림을 보는 것은 오너의 의사결정이 가장 중요한만큼 최 회장의 빈자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SK그룹의 투자 실적은 지난해 대비 2조원 가량 감소했다. 대기업이 몸을 움츠리자 국내 경제는 물론 고용 시장도 함께 쪼그라들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경기 부양 차원에서 대기업 오너들에 대한 가석방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24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기 부양에 적극 나서라는 차원에서 (기업인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청와대에 (이런 뜻을) 전달할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일반인도 일정 형기가 지나면 가석방 등을 검토하는 것이 관행"이라며 "기업인이라고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업인에 대한 가석방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이를 찬성하는 의견도 나왔다.
박지원 의원은 "고위공직자나 기업인에 대해서 우대를 하는 것도 나쁘지만 불이익을 주는 것도 나쁘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가석방 ‘역차별’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한편, 청와대에서는 기업인 가석방에 대해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며,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기업인 가석방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원칙대로 할 일"이라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