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위한 목적 의식 가져야… ‘조상제한서’처럼 사라질 수도
부동산에 편중된 가계 자산… 은퇴 특화 상품으로 완화해야
해외 진출 확대·자본시장 질적 발전… 정부 인프라 마련 절실
  • ▲ ⓒ 연합뉴스
    ▲ ⓒ 연합뉴스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서 금융회사 평가를 시작했겠습니까!”

    지난 13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은행 혁신성 평가 세미나에 참석한 금융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우려는 이제 새삼스러운 주장이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2014년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성숙도 조사 결과 역시 이 같은 위기론을 뒷받침해 준다. 평가에 따르면 조사대상 144개국 중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성숙도는 80위에 불과하다. 국가경쟁력이 세계 26위인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성적이다.

     

    이는 아프리카 우간다(81위)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나(52위)·보츠와나(53위)·콜롬비아(63위)보다 순위가 낮다.

    세부 평가항목을 살펴보면 결과는 더욱 참담하다. 은행 건전성 122위, 대출 이용가능성 120위, 벤처자본 이용가능성 107위, 금융서비스 이용가능성 100위 등으로 하나같이 세 자릿 수 순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로 마지 못해 하는 혁신이 아닌, 은행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서 시행하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또 “인프라 구축 등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해외진출·자본시장 질적 발전 위한 인프라 마련 절실

    한국금융연구원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올해 도전해야 할 7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 해외진출 확대 △자본시장 질적 발전 △금융지주회사제도 개선 △업권별로 동등한 기회와 원칙 제공 △가계부채 완화 및 부동산 중심 가계자산구조의 전환 △금융교육 확대 △금융감독당국의 기능 강화 등이다.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활성화를 위해선 국가적 차원의 인프라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금융연구원은 지적했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듯, 글로벌 금융기업의 탄생을 위해서는 개별 금융사 뿐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국가적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자봉 연구위원은 “무역진흥공사처럼 해외 금융시장 조사와 현지 네트워크 구축 기능을 더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며, 독립된 조직을 설치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의 질적 발전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 간 증권사들의 투자은행(IB) 업무가 후퇴했다고 진단한다. 국내 증권사들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부족하고 규모가 작은 탓이다.

    ◇ 금융지주제·부동산 중심 가계자산 개선해야 

    금융지주회사제도의 경우 지주회사 구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기존 자회사와의 통폐합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자봉 연구위원은 “국내 지주회사들은 은행을 인수하는 경우 기존 은행 자회사와 통폐합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조건적인 통합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자회사 수가 많으면 자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지주회사 내 권한도 그만큼 분산되기 때문에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갈등의 소지도 완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계부채 완화와 부동산 중심의 가계자산 보유 구조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자봉 연구위원은 “한 국가의 부동산 자산 비중이 70%를 넘는 상황에서 금융업이 발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며 “비금융자산을 금융자산으로 전환하기 위해 부동산 가치가 안정될 필요가 있고 동시에 부가가치가 높은 은퇴용 금융상품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구성에서 비금융자산(부동산)과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75%, 25% 수준이다. 미국(31.5%, 68.5%), 일본(40.9%, 59.1%)에 비하면 눈에 띄게 높은 수치다.

    금융연구원은 이외에도 미국처럼 저축은행이 상업은행과 동일한 기준의 건전성 감독을 받고, 이로 인해 준수해야 하는 자본비율도 동일하게 적용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이를 토대로 서민을 위한 금융사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금융교육을 통한 소비자 금융역량이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금융교육을 학교 정규 교과과정에 도입하는 한편, 금융시장의 신뢰를 지키는 감독당국의 시장지킴이 기능을 보다 강화하고 제도적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 스스로 변화하려는 의지 중요…변하지 않으면 생존 못 해

    특히 금융 전문가들은 “금융권이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채수일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대표는 “금융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필요성을 가장 절감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은행 자신”이라며 “은행은 왜 혁신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하며, 당국은 이에 걸맞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지원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과거 5대 은행이었던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가 모두 사라졌다. 지금 4대(국민·우리·하나·신한) 혹은 5대(4대은행+농협) 은행도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며 “은행권 스스로가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