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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팬텀'은 평생 클래식만을 해 온 저에게 새롭고도 어려운 도전이었어요. 하지만 팬텀을 통해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깨닫게 된 것 같아요. '팬텀'은 클래식과 뮤지컬, 발레, 연극 등 다양한 요소가 모두 결합된 새로운 장르죠. 앞으로도 정통 클래식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아트가 창조되고, 그러한 장르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음악 메신저가 되고 싶습니다."
최근 뮤지컬 '팬텀'의 크리스틴 다에 역을 맡아 뮤지컬 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소프라노 김순영을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평생 클래식 외길만을 걸어왔던 소프라노 김순영이 갑자기 뮤지컬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것도 흥행이 보장된 인기 오페라가 아닌, 한국에서 초연되는 뮤지컬 '팬텀'을 선택한 것은 어찌보면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러나 뮤지컬 '팬텀'은 흥미로운 스토리와 실력파 음악가들의 열연으로 지난 4월 28일 공연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전석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처음에 '팬텀' 제의를 받았을 때 반신반의했죠. 오페라 무대에는 많이 서 봤지만 노래와 무용, 연극적인 부분까지 소화해야하는 뮤지컬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됐어요. 주변의 우려도 있었고요. 하지만 팬텀 아리아를 듣곤 '해야겠다,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제 스승이신 정기옥 교수님께서 격려해주셔서 용기를 냈죠." -
'팬텀' 속 김순영은 팬들 사이에서 '순크리(순영 크리스틴 다에)'로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특히 '마이 트루 러브(My true love)'와 크리스틴이 극 중 오페라 디바로 인정받게 되는 비스트로 신에서의 넘버들은 김순영만의 풍부한 성량과 화려한 기교를 단적으로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공연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김순영은 성량과 감성, 노래 실력은 물론 연기적인 면까지 채워지며 뮤지컬계에서 크리스틴 다에 역에 꼭 맞는 뮤지컬 배우로 완벽하게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페라와 뮤지컬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어요. 성악 발성만을 사용해 노래를 하면 관객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진성을 쓰는 뮤지컬 창법을 새로 익혀야했고 긴 대사와 춤도 처음엔 정말 어색했죠. 거기다 모든 열정을 쏟아 붓는 수십명의 실력파 배우, 앙상블과 호흡을 맞추면서 제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상당했어요."
김순영은 2개월 간 연습을 하며 홀로 뜨거운 눈물을 여러 번 쏟아냈다. 여주인공으로서의 막중한 부담감과 뮤지컬 첫 도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어느 순간 불안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
중저음이 깊고 따뜻한 색깔의 보이스를 가진 김순영은 크리스틴 다에 역이 청초하고 맑고 예쁜 소리를 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 억지로 꾸며내는 목소리로 연기하다 보니 더 자신감이 떨어지고 배역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순영을 믿어준 것은 그를 가장 가까이 지켜본 '팬텀' 가족들이었다.
"연습을 하면서 슬럼프에 빠졌어요. 제 목소리가 크리스틴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때문이었죠. 그런데 감독님과 연출자인 로버트 요한슨이 제 목소리를 믿고 저만의 크리스틴을 완성하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때 생각을 깨고 저만의 크리스틴을 완성해야겠다고 용기를 내게 됐어요. 신영숙 선배님과 이정열 선배님 그리고 카이와 에녹 등 동료 배우들의 응원도 정말 많은 위로와 힘이 됐습니다."
자신감이 붙은 김순영은 연기와 노래에 여유가 생겼고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도 하루하루 세밀해져갔다. 모든 욕심을 바닥까지 내려놓자 진짜 김순영만의 크리스틴이 완성돼 갔다. 팬텀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목소리 컨디션이 좋아지고 연기할때도 더욱 즐겁다고 말하는 김순영을 보고 있자니 순박한 소녀에서 오페라 디바로 성장해나간 극 중 크리스틴 다에의 모습이 겹쳐졌다. -
이번 뮤지컬에 도전하며 김순영 내부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까지 김순영은 클래식만을 고집해왔지만 클래식과 뮤지컬, 발레, 연극, 콘서트가 결합된 새로운 장르의 음악극을 통해 관객들과 더욱 가깝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됐다.
"시대가 바뀐만큼 정통 클래식 무대가 넓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르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아트가 창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팬텀이 사랑받는 이유 또한 같은 이유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클래식과 다른 공연의 경계를 깬 새로운 장르의 음악공연을 개척하는 메신저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김순영은 최근 KBS 1TV 문화빅뱅 ′윤건의 더 콘서트′에 출연해 오페라부터 뮤지컬넘버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으며 오는 28일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까르미나브라나, 7월 2일 군산시향협연, 8월 17일 광복 70주년 음악회(예술의전당), 11월 미국 아틀란타 초청 음악회 등 빡빡한 스케줄로 가득 차 있다. 오는 7월 26일까지 뮤지컬 '팬텀' 공연이 마무리 된 후에는 차기 작품을 고를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김순영은 "앞으로 좋은 콘서트와 오페라, 뮤지컬, 방송 등을 통해 항상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면서 "새로운 작품에서도 늘 실력으로 인정받는 음악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한편 뮤지컬 '팬텀'은 가스통 르루의 추리소설 '오페라의 유령'(1910)을 원작으로 극작가 아서 코핏과 작곡가 모리 예스톤이 완성한 뮤지컬이다. 팬텀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 깊게 파고들어 그의 삶 속에 감춰진 비밀과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작품으로 현대적 음악과 정교한 발레 안무, 정통 클래식 등이 어우러져 호평을 받으며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