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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를 상대로 한 법정 대결에서 승리했다.
이에 따라 삼성이 추진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 오너 일가의 삼성전자 지배권 승계 작업은 한층 더 탄력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용대 민사수석부장)는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금지 가처분 신청'을 1일 기각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이 제시한 합병비율(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은 관련 법령에 따라 산정된 것으로, 산정기준 주가가 부정행위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닌 이상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삼성물산 경영진이 주주 이익과 관계없이 삼성그룹 총수 일가, 즉 제일모직 및 그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합병을 추진한다고 볼 자료도 없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엘리엇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부당하다며 지난달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었다.
엘리엇은 지난달 19일 가처분 심문 기일에서 "합병 무효 소송이 제기되면 '무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본안 소송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당시 엘리엇 측은 합병의 목적이 오직 오너 일가의 삼성전자 지배권 승계를 목적으로 한다며 무리한 합병 추진으로 삼성물산 주식이 저평가돼 주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은 법에 정해진 절차를 따랐고, 합병이 알려진 뒤 시장의 객관적 평가인 주가가 오르는 등 이번 합병이 불공정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다만 엘리엇은 이번 법리대결과 오는 17일 열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위한 임시주총 표대결에서 패배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외로 끌고 나가며 장기적인 싸움을 진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국내에서 진행되는 법정 대결은 엘리엇 역시 패배를 어느 정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엘리엇이 소송전을 시작할 당시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자본시장법에서 시세(주가)를 시장에서 형성된 공정 가격으로 보고 있어, 합병비율 산정의 부정당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며 "과거 SK와 소버린 사이에서 벌어진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각도 국내 판결은 SK의 손을 들어준 바 있어, 법리대결에서 엘리엇의 승산은 낮다"고 말했다.
국내 상법에 따라 산출된 합병비율이 문제가 없는 만큼, 엘리엇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합병비율(1대 0.35) 역시 문제가 없다는 것.
하지만 엘리엇이 이를 외국으로 가져갈 경우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법조계 시각으로는 삼성물산이 적법하게 합병 비율을 산정했지만 외국계 투자자, 소액투자자를 비롯해 일부 해외 법조계의 시각에서는 합병 비율이 잘못됐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엘리엇이 자본시장법을 바탕으로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을 제기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만약 이 경우에는 예측이 어려워 진다. 국내에서는 합병이 시장 가치를 따르는 반면 해외에서는 엘리엇의 주장처럼 순자산가치가 합병비율 산정의 주요 기준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시각에 따라 정 반대의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결국 엘리엇은 이번 이슈를 장기전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소송 제기를 통해 주주들을 설득하고, 합병반대의 명분을 쌓아가면서 최종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는 오랜 시간을 들여 수많은 단계와 방법을 거쳐 원하는 것을 얻어냈던 엘리엇의 과거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