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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납토성을 놓고 한성백제의 왕성이란 주장과 아니라는 주장이 팽팽이 맞섰다.
'풍납토성 사적지 및 환경대책위원회'는 13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서울 풍납토성 백제왕성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충남대 박순발 고고학과 교수가 '백제 도성, 풍납토성'을, 이희진 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일까?'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박순발 교수는 "풍납토성 내엔 동서로 이어지는 도로망과 더불어 남북 도로망도 확인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도로망의 구성으로 보면 종묘로 판단되는 경당 44호 북단에 있는 동서 도로망의 북측 지역이 왕궁의 입지로는 가장 유력하다"며 '풍납토성 한성백제 왕성론'을 지지했다.
이어 "중국의 역대 도성 궁성이 외조 정전, 내조 정전, 후침 등 3진 원락 구조로 정착돼 청대까지 지속된 점을 참고하면, 백제의 왕궁 역시 이런 구조였을 가능성이 높다"며 "풍납토성에서 발견될 왕궁 역시 지상 건물지로서 상돈 방식의 주초(주춧돌)로 돼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지금 경주 월성에선 신라의 왕궁을 찾기 위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머지 않아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백제 도성 최초의 왕궁 소재지인 풍납토성의 위상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묻혀 몰각의 위기에 처하고 있어 대조적이다"고 밝혔다.
두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선 이희진 소장은 △주춧돌(초석)이 발견되지 않은 점 △발견된 기둥 규모가 작다는 점 △왕성 규모가 작다는 점△도시구조가 무질서하다는 점 △홍수가 잦았다는 점 △엄청나게 많은 유물이 나온 점 △옛 기록에서의 위치 등 '7가지 미스터리'를 제시하며 박 교수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소장은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왕궁"이라며 "풍납토성이 왕성이었다면 당연히 왕궁의 흔적이 발견돼야 하지만 왕궁의 근거가 될 수 있을 만한 주춧돌같은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발견된 주춧돌은 왕성급이 아닌 움집 수준에 불과하다"며 "고구려 왕들이 대형 기둥을 받치고 있는 와궁에서 살았는데 그 라이벌인 백제왕이나 귀족들은 그때까지도 움집 수준의 건물에 살았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또 "풍납토성은 대한민국 발굴 역사상 최대의 유물이 쏟아져 나온 곳이지만, 유물은 반드시 번성했던 왕성에서만 많이 출토되는 건 아니다"며 "한강의 범람으로 토사가 퇴적돼 보호막 역을역할을 했기 때문에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유물도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주제 발표 이후엔 정원영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의 사회로 토론이 진행됐다. 패널로는 주제발표자들과 함께 한종섭 백제문화연구회장,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유적학과 교수 등이 참여했다.
한영진 풍납토성 사적지 및 환경대책위 위원장은 "최근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있는 백제 관련 역사유적지구인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축하할 일이다"면서도 "유네스코 등재에서 빠진 풍납토성의 실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과연 한성백제의 왕성이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한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왕성이다'는 주장이 대세론으로 굳어지면서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수십년간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왔다. 현재까지도 이주비용 문제 등으로 문화재청,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