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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가 정석에도 없는 수(변칙수)로 이세돌 9단을 당황하게 했다. 처음에는 실수나 악수처럼 보였지만 결과를 보면 승리로 가는 징검다리가 됐다. 통념을 벗어난 수가 사실은 '신의 한 수'인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의 경영도 타이어업계에서 변칙수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 국내에 대규모 투자를 한 점과 중국 대신 북미를 공략한 점이 그렇다.
강 사장의 변칙수 경영은 실적에서 빛이 났다. 넥센타이어는 2009년 매출 9662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조7587억원으로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내수시장 점유율은 2000년 8%에서 지난해 25%를 넘어섰다.
타이어업계의 반항아로 통하는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의 경영 반상을 복기한다.
◇경남 창녕 공장 건립, 자충수(自充手) 아닌 묘수(妙手)
2009년 강 사장은 경남 창녕에 새 공장을 짓겠다고 나섰다. 당시 국내 타이어업체들이 앞다퉈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고 있는 상황과는 정반대의 행마였다.
내부에서는 무리수라며 반발이 심했다. 땅값도 저렴하고 인건비도 적게 드는 해외에 공장을 짓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팽배했다. 게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국내에 연간 매출보다 많은 1조5000억원을 투자한다고 하자 노조까지 들고 일어났다.
하지만 강 사장은 강경했다. 그는 "현재 넥센타이어는 경쟁업체와 비교해 연간 생산능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라며 "넥센타이어의 경쟁력은 품질력이어야 하며 품질력을 높이려면 '메이드 인 코리아'로 승부해야 한다"고 과감하게 바둑판 위에 돌을 올려 놨다.
강 사장의 수읽기(앞으로 놓을 자리를 먼저 생각하는 일)는 적중했다. 2012년 완공한 창녕공장은 현재 1100만개의 타이어를 생산하는 세계 최고의 자동화 생산라인으로 자리 잡았다. 품질력도 점차 높아졌다.넥센타이어 관계자는 "완성차업체 사람들이 창녕공장을 방문하면 줄곧 거래가 성사됐다"며 "이 공장을 보기만 하면 타이어를 사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실제, 창년공장 가동 이후부터 2012년 일본 미쓰비시의 중형차 랜서(LANCER)를 시작으로 2013년에는 CUV 차량인 아웃랜더 스포츠(OUTLANDER SPORT)로 공급을 확대했다. 이탈리아 피아트, 미국 크라이슬러와 닷지, 독일 폭스바겐, 체코 스코다 등에도 공급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FCA(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 올 뉴200·램 3500·램 프로마스터, 스페인의 세아트, 르노그룹 계열의 다치아 브랜드 '로지','도커'에도 공급됐다. 올해 들어서도 피아트 최초의 크로스오버형 차량인 '500X'와 대표 상용밴인 '듀카토', 르노의 '트윙고(Twingo)', 폭스바겐 '캐디' 등에 넥센의 타이어가 공급되고 있다.
기보에는 없던 강 사장의 새로운 수가 넥센타이어의 실적을 견인하게 만든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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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이은 변칙수(變則手) 통했다
강 사장의 변칙수(원칙에서 벗어난 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가 중국 시장에 집중할 때 넥센타이어는 미국 시장에 주력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경기침체와 타이어회사 간 경쟁심화라는 악수(잘못 두는 나쁜 수)를 피할 수 있었다.
반대로 넥센타이어는 경기가 회복된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타이어 규제라는 호재까지 겹치면서 호황을 누렸다. 그 결과, 지난해 매출은 1조8375억원으로 4.5%(787억원), 영업이익은 2249억원으로 7.8%(163억원) 각각 증가했다.
마케팅에서도 새로운 수를 보였다. 넥센타이어는 한국·금호타이어와 달리 레이싱 같은 고급 스포츠보다 야구나 축구 같은 대중 스포츠에 주력했다. 성과는 두드러졌다. 업계는 넥센타이어가 6년간 야구팀 넥센히어로즈 메인 스폰서로 활동하면서 1000억원 이상의 홍보 효과를 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 이 기간동안 매출은 40% 이상 증가했다.
또 강 사장은 최근 신개념 '타이어 렌탈 서비스'를 전격 시행하며 또 한 번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다. 타이어 렌탈 서비스는 일종의 할부 프로그램으로 36개월 동안 타이어 가격을 나눠 지불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서비스는 입소문을 타면서 새로운 개념의 타이어 렌탈시장이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서비스를 시작한지 두 달만에 '넥스트 레벨' 가맹점수가 100여곳으로 확대됐다. 적은 비용으로 교체가 가능하면서 소비자들의 가격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인 게 주효했다.
이제 강 사장의 대국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강 사장은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지난 2009년 대표직에 내려온 뒤 6년만의 복귀다. 강 사장의 다음 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