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처·경쟁국 미청구공사 악용, 해외사업 경쟁력 약화 우려대형사 1분기 영업익 시장기대치 하회 전망
  • ▲ 건설사들이 올 1분기부터 적용되는 금융위원회 등 정부 당국의 회계 기준 강화 방침에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상장된 대형 건설사 로고.ⓒ각 사
    ▲ 건설사들이 올 1분기부터 적용되는 금융위원회 등 정부 당국의 회계 기준 강화 방침에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상장된 대형 건설사 로고.ⓒ각 사


    건설사들이 올 1분기부터 적용되는 금융위원회 등 정부 당국의 회계 기준 강화 방침에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주 산업의 특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며 불만스러워하는 모습이다. 

    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1분기 실적부터 회사 전체 매출액의 5% 이상을 차지하는 사업장의 △미청구공사액 △공사 진행률 △충당금 등이 공시된다. 이전에는 건설사들이 회사 전체의 미청구공사액 등을 공시했지만 개별 사업장의 정보를 공개하도록 바뀐 것이다. 

    다만 당국은 회계 기준 강화 원안과 달리 공사손실 충당부채와 공사손익 변동금액 등을 공시 대상에서 제외했다. 발주처와 수주사가 계약 시 합의했다면 개별 사업장의 미청구공사액 등을 공시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예외 조항도 만들었다. 

    공사손실 충당부채 등은 영업 비밀인 원가와 직접 관련되는 정보라는 업계의 지적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건설사들은 일부 업계의 의견이 반영됐음에도 강화된 회계기준 적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A 건설사 관계자는 "당국에 협조하겠다는 것이 회사 입장"이라며서도 "미청구공사액이 공개되면 해외 발주처와 경쟁국에서 이를 악용할 수 있어 우리 건설사들의 해외수주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B건설사 역시  "이번 회계 기준 강화로 원가 관련 정보가 공개돼 해외 사업에서 수주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건설업은 돈이 들어오는 방식이 제조업 등과 다르다. 중동 등 리스크가 큰 지역의 사업장에서 공사 진행에 문제가 생겨 건설사들이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업계의 상황이 좀 더 고려됐어야 했다" 강조했다.

    대한건설협회 역시 회계 기준 강화로 건설사들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선영 건설협회 시장개척실 과장은 "당국이 건설업계 요구를 일부 수용했고 회계 투명성을 제고하자는 정책 취지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면서도 "미청구공사액만 공개돼도 발주처는 사업장을 비교해가며 조건을 따질 수 있어 건설사들이 불리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에서 수주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데 다른 국가들이 숨기는 정보를 우리가 공개하게 돼 불리해질 수 있다"며 "추후 건설업의 피해가 커지면 개선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장 대형 건설사의 1분기 실적은 시장 기대치를 하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업계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GS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등 5개사의 합산 매출액이 전년 동기보다 6.6%, 영업이익은 16.6% 증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시장 기대치(영업이익 4482억원)보다 낮은 수치다.


    박상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1분기부터 현장별 미청구공사액이 공개되기 때문에 보수적 회계처리 우려가 존재한다"며 "다만 직전 분기 미청구공사 감소 전환으로 대규모 손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건설업계의 경쟁력 약화 우려가 있음에도 당국이 회계 기준을 손질한 것은 수주 산업의 해외 사업장 부실로 인한 회계 투명성 악화를 막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건설, 조선과 같은 수주 산업의 회계는 공사 진행률과 계약에 맞춰 매출액을 인식하기 때문에 사업 상황에 따라 대규모 손실(어닝 쇼크)이 발생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은 5조50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영업손실을 냈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지난해 3분기 1조5127억원에 이르는 영업손실을 기록해 투자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두 회사 모두 해외 사업장에서 공사가 늦어지면서 추가 원가가 발생해 손실이 크게 불어났다.

  • ▲ 자료사진.ⓒ현대건설
    ▲ 자료사진.ⓒ현대건설


    한편 이번 회계 기준 강화에 포함된 핵심감사제는 건설업계보다 감사를 맡는 회계법인에서 비판적인 태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감사제는 감사인이 적정, 부적정 등으로 표현하던 감사보고를 업체의 리스크 정보까지 상세히 서술하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기업이 감사인을 고르는 현 상황에서 핵심감사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 회계법인들의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