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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극심한 수주 가뭄에 시달렸던 국내 조선업계가 바닥을 찍고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하나씩 수주 낭보가 날아들더니 올해 들어 더욱 탄력받는 모양새다.
해양플랜트 분야는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수요가 살아나는 분위기이고, 상선 분야는 신규 선박 공급이 줄면서 수급 균형이 맞아가고 있다.
조선업계가 당장 오랜 불황을 털고 일어설 정도의 분위기는 아니지만 지금처럼 수주가 쌓이면 올해 하반기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 재도약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강환구 현대중공업[009540] 사장도 지난 12일 '조선 해양인 신년인사회'에서 "작년 조선경기가 바닥이었고 올라갈 일만 있지 않느냐고 해서 기대를 조금 하고 있다"며 "올해는 작년보다 좋아질 것 같다"고 전망한 바 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010140]은 지난 18일 해양플랜트 설비의 일종인 FSRU(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 재기화 설비) 수주 소식을 나란히 전했다.
FSRU는 해상에서 천연가스를 기화한 뒤 육상으로 직접 공급할 수 있는 선박 형태의 설비다. 수주금액은 척당 2억3천만달러(약 2천700억원) 선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2월에는 이란에서 7억 달러(약 8천200억원) 규모의 선박 10척 수주에 성공하는 쾌거를 올렸다.
삼성중공업도 이달 초 1년6개월만에 12억7천만달러(약 1조5천억원) 규모의 해양플랜트를 수주했다.
지난해 신규 수주금액이 5억2천만달러(약 6천억원)에 그쳤던 삼성중공업은 벌써 이달에만 15억달러(약 1조8천억원) 규모의 수주 실적을 거둔 것이다. 지난해에는 저유가로 인해 세계적으로 해양플랜트 발주가 없었다.
대우조선해양[042660]도 지난해 12월 액화천연가스(LNG)-FSRU 1척에 대한 계약을 따내 '수주절벽'에 숨통을 틔웠다.
대우조선은 1조원이 걸린 소난골 드릴십(원유 시추선) 인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우조선은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이 발주한 드릴십 2기의 인도가 연기되면서 1조원 가량의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간 인도 협상이 지지부진했지만 지난해 말부터 일정 부분 진척을 보이고 있다. 3월말까지는 드릴십 인도를 마무리하는 게 대우조선의 목표다.
콘테이너나 LNG 운반선 등 상선 분야는 그간 세계적으로 선복(화물적재 공간) 과잉에 시달렸으나 최근 어느정도 해소됐다. 노후 선박이 많이 해체됐고 신규 발주량이 줄어들면서다.
이처럼 조선업계 경기가 살아나는 것은 국제 유가 상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난해 배럴당 40달러선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국제 유가는 최근 50달러 초반으로 올라섰다.
유가가 오르면 시추 사업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해양플랜트나 드릴십 등에 대한 수요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세계 경기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물동량이 늘어나는 상황도 관련 상선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도 조선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가 추진해온 화석연료 규제 등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장차 석유 개발 등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이후 선박 배출가스 관련 국제 규제가 강화되는 점도 장기적으로 조선업계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청정 연료인 LNG 선박을 도입하려는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석유 시추의 경우 기술 개발로 인해 손익분기점이 예전 배럴당 60~70달러에서 최근 50~60달러로 낮아졌다"며 "최근 유가 상승으로 인해 중단됐던 시추 프로젝트가 재가동되면서 해양플랜트 수요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선박 제조용 철판인 후판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는 점이나 국제 유가와 세계 경기 전망이 여전히 불확실한 점 등은 조선 경기 회복에 부담이다.
홍 연구위원은 "앞으로 세계 경기의 회복 수준이 상선과 해양플랜트 발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