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 지분 65% 넘겨주고 자금 2.3억 융통 공장부지 문제로 갈등, 35% 지분 마저 뺏길 처지
  • ▲ 영보화학 전경. ⓒ영보화학 홈페이지
    ▲ 영보화학 전경. ⓒ영보화학 홈페이지

     

    "현장에서 익힌 30년 노하우를 쏟아부어 회사를 설립해 10년여 동안 규모를 몇곱절 이상 키워놨더니 한순간 대기업인 영보화학에 회사도 기술도 빼앗겼어요." 벤처기업 무한(MUHAN)의 창업자 박 모씨의 하소연이다.

     

    무한은 에어컨에 사용되는 배관 제품을 제조·생산하는 벤처기업으로, 지난 2003년 설립됐다. 설립 당시 창업자 박 씨는 자금 부족을 이유로 영보화학에 손을 내밀었다. 지분 65%를 제공하는 대신 자금 2억3500만원을 투자 받았다. 결국 이 자금이 10년여가 지나 부메랑이 돼 그의 목줄을 파고들었다.

     

    지난 1979년 설립된 영보화학은 가교발포 폴리올레핀 폼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중견기업이다. 지난해 기준 매출액은 1578억원 정도다. 본사 소재지는 충북 청주 흥덕 강내면으로, 주로 자동차 내장재와 건축용 보온재, 건축용 층간소음완충재, IT용 LCD 간지, 산업용 에어컨 배관재 등을 제조한다. 각종 화학제품을 제조·판매하는 일본 세끼스이(積水)화학공업이 최대주주다.

     

    무한 설립 초기, 박 씨와 영보화학은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에 비유될 정도로 관계가 좋았다. R&D(연구개발) 인력이 없었던 박 씨는 영보화학에 소속된 연구원들과 손잡고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영보화학측도 이런 박 씨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통해 박 씨는 에어컨용 배관장치 및 이의 제조방법, 공기조화기용 배관 제조장치의 홈가공지그, 공기조화기용 배관재의 PVC(폴리염화비닐) 주름관 덧씌움 장치, 공기조화기용 배관 제조를 위한 단열재의 홈 가공 장치, 공기조화기용 배관의 제조방법 및 장치, 공기조화기용 배관의 절단장치, 공기조화기용 배관의 파이프 및 전선 삽입장치, 공기조화기용 매입 배관의 압력 측정장치, 공기조화기용 배관의 제조장치 등 다수의 기술 특허를 획득했다.

     

    무한의 실적도 승승장구했다. 자본금 3억원에서 시작해 매출 15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상주 직원도 3명에서 55명으로 20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던 박 씨와 영보화학의 관계가 틀어진 건 2012년께 공장부지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다. 당초 무한은 도로와 가까이 있는 무한 소유의 부지에 공장을 지을 계획이었다. 제품의 입·출고와 수송관리 등에 유리할 뿐 아니라 직원들의 출·퇴근을 고려해서다.

     

    하지만 영보화학측은 도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자사 소유의 부지를 구입해 공장을 지으라고 박 씨를 압박했다. 이에 박 씨는 "원래 계획대로 공장을 짓겠다"며 반기를 들었다. 영보화학 최대주주인 세끼스이화학공업의 사업부장이 방문했을 땐 "왜 설명 한마디도 없이 원래 부지에 공장을 못짓게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박 씨와 영보화학의 관계는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 1년 정도가 지나 박 씨는 무한의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게다가 영보화학측은 4억여원에 박 씨 소유의 지분 35%를 넘길 것을 요구했다. 지분을 통해 무한에서 감사 활동을 하는 권리 조차도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게 박 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박 씨는 10년여 사이 무한의 규모가 커진만큼 지분의 가치도 높여달라며 이를 거절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자 영보화학측은 박 씨를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대표 시절 사업을 영위하면서 거래업체 등에 제공한 금품 등을 문제 삼았다.

     

    박 씨는 "당시 관행이었고 영보화학측도 알고 있던 사항이었는데 이제 와서 약점을 잡아 악용하고 있다"고 억울해 했다. 박 씨는 또 "건설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30여년동안 힘들게 일하면서 에어컨 배관 기술을 쌓았고 이를 토대로 무한이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했는데…"라면서 "이것이 벤처기업인의 말로(末路)인 것 같아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영보화학 측은 "일 없다"며 인터뷰 자체를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