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그룹에 이어 한진그룹도 행동주의펀드의 타깃이 되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를 내걸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배당 등 실리 추구와 함께 경영권까지 위협하는 상황이다. 국내 기업들이 지배구조에 취약하다는 점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것.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행동주의펀드들이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인 KCGI가 만든 투자목적회사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난 15일 장내매수를 통해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9.0%(532만2666주)를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KCGI는 국내 행동주의펀드 1세대로 알려진 강성부 대표가 설립한 사모펀드이다. 그레이스홀딩스는 한진칼 지분 취득 목적을 경영 참여라고 밝히면서 조양호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을 예고했다.
현재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이 28.95%를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국민연금 8.35%, 크레디트스위스 5.03%, 한국투자신탁운용 3.81% 등으로 지분을 갖고 있다.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분 9.0%를 확보해 단숨에 2대주주에 올라섰다.
그레이스홀딩스가 기관투자자나 소액투자자들을 규합해 표대결을 펼칠 경우 한진그룹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총에서 이사진 교체를 통해 이사회를 장악하면 한진칼은 물론 한진그룹 전체 경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진칼은 그룹의 지주사로 대한항공 29.96%, (주)한진 22.19%, 진에어 60.0%, 칼호텔네트워크 100% 등의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은 앞서 현대차그룹에서도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현대모비스의 모듈 및 AS 부품을 사업을 떼어내 현대글로비스에 합병하는 등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으나, 행동주의펀드인 엘리엇 등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엘리엇은 13일(현지시각)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3사 이사진에 서신을 보내 주주환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이 심각한 초과자본상태로 현대차 8조~10조원, 현대모비스 4조~6조원에 달하는 초과자본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최대 16조원에 이르는 초과자본을 주주들에게 환원하라고 주장한 것이다.
아울러 현대차그룹 각 계열사 이사회에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추가로 선임하는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엘리엇 및 다른 주주들과 협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행동주의펀드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진성 한국기업지배구조원 팀장은 “행동주의펀드들이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바란다면 배당 요구 등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결국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명분으로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엘리엇과 KCGI 이외에 행동주의펀드의 국내 기업 공격이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 팀장은 “현대차와 한진 같은 사례가 추가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기업들은 이 사례들을 교훈삼아 지배구조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되면 기관투자자들이나 소액주주들도 행동주의펀드의 무리한 요구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