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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파미셀의 줄기세포 치료제 '셀그램-LC'의 조건부 허가 신청이 좌절되자 줄기세포 업계가 출렁이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바이오 업계에 규제 완화를 약속해온 것과 정반대의 행보라는 지적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지난 1일 파미셀의 알코올성 간경변 줄기세포 치료제 '셀그램-LC'의 조건부 허가 신청을 반려했다. 임상시험 환자들이 조건부 허가 요건에 속하는 중증 환자가 아니고 생존율 개선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조건부 허가는 난치성이고 비가역적인 질환에 대해 안전성이 확인되고, 임상 2상 시험 자료가 있으면 시판을 허가하는 제도로 지난 2016년 도입됐다. 환자에게 치료 혜택을 신속히 제공하면서 이후 임상 3상을 실시하며 최종 결과를 확인하는 게 해당 제도의 입법 취지다.
파미셀은 이번 반려가 식약처 심사관의 무리한 요구로 인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파미셀은 "식약처 담당 심사관이 입법 취지에 맞지 않는 '치료적 확증의 결과' 또는 '임상 3상 시험이 100% 성공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며 "이에 부합하는 임상 2상을 실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파미셀은 관련 법령에 따라 60일 내에 이의 신청을 하고, 대한간학회에 셀그램-LC에 대한 임상 3상 시험을 의뢰할 계획이다.
파미셀은 지난 2011년 식약처로부터 세계 최초 줄기세포 치료제인 '하티셀그램-AMI'를 조건부로 허가받은 업체다. 때문에 이번 조건부 허가 반려로 인한 시장의 충격도 상당했다. 셀그램-LC의 조건부 허가가 좌절되면서 지난 7일 파미셀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29.0%(4800원) 급락했다.
이번 일로 파미셀뿐만 아니라 줄기세포 업계에서도 규제 장벽을 체감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스템바이오텍 등 줄기세포 업체들의 줄기세포 치료제 시판 허가가 줄줄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파미셀의 셀그램-LC를 포함해 최근 3년간 조건부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는 1개도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최근 5년간 새롭게 시판 허가를 받은 국내 줄기세포 치료제가 전무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시판되는 줄기세포 치료제 8개 중 절반인 4개가 국산인 것에 반해 국내 규제 장벽이 너무 높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임상 3상에 준하는 자료를 요구했다는 건 조건부 허가의 의미가 약해지는 것"이라며 "조건부 허가 제도의 입법 취지대로 많은 환자들에게 신속하게 제공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줄기세포 업계에선 이웃나라인 일본, 중국에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도 일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2018년 국내외 바이오 정책 및 투자 동향'에 따르면, 글로벌 줄기세포 시장은 2017년 628억 달러(약 68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 오는 2025년에는 3944억 달러(약 429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처럼 빠르게 성장 중인 글로벌 줄기세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일본과 중국은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다.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줄기세포에 기반한 재생의료 규제개선을 우선적으로 시작했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지난 2014년 '재생의료법'을 시행해 재생의료 행위에 대한 규제 문턱을 낮추고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중국 정부는 일찍이 줄기세포 육성에 힘써왔다. 지난 2011년 과학기술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과학원, 자연과학기금위원회, 교육부, 위생부 등의 고위 관계자로 구성된 '줄기세포연구 국가지도조율위원회'를 설립했다. 중국 과학기술부는 지난 2017년 줄기세포를 중점 육성할 4대 기술 중 하나로 제시하고, 지난해에는 줄기세포 및 사업화 시범사업으로 8개 과제에 6억 3000만 위안(약 1044억원)을 투자했다.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세계적인 연구 성과들이 잇달아 배출되고 있다. 지난 2017년 중국과학원 동물연구소의 저우치(周琪) 교수 연구진이 인간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해 파킨슨병 치료와 황반변성 치료 분야에서 성과를 냈다. 중산대학의 류이즈(劉奕志) 교수 연구진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백내장 치료용 수정체 원위치 재생에 성공했다.
업계 전문가는 "중국과 같은 바이오의약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는 경쟁 분야에서는 중국의 발전 양상을 주의 깊게 살피는 한편, 중국의 산업 육성 정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승재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우리나라가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해 너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며 "산업계 입장에선 정부 차원에서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해 선제적으로 나서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