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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의 고의 분식회계 관련 증거인멸 혐의에 대한 두 번째 재판이 열렸지만 삼성 측 피고인 대부분은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기소된 지 2달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검찰이 혐의 구체성을 특정하지 않아 법리적 판단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소병석)는 23일 오전 10시 증거인멸이나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구속기소된 삼성전자 사업지원TF 김모 부사장, 인사팀 박모 부사장, 이모 재경팀 부사장, 백모 상무, 보안선진화TF 서모 상무,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 양모 상무, 삼바 안모 대리 등 피고인 8명에 대한 2차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공판준비기일은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 측의 입장을 듣고 향후 입증 계획을 정리하기 위해 열린다. 지난달 18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는 검찰의 증거인멸 수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 열람을 제한해 삼성 측 변호인들이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을 제대로 밝힐 수 없었다.
이번 공판준비기일에는 재판에 대한 실질적인 준비를 마칠 것으로 예상됐으나, 한 차례 공판준비기일이 더 열리게 됐다. 공소사실에서 아직 혐의가 제대로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안모 대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피고인 측 변호인들은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에피스 측 변호인은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삼바 회계 비리 등이 막연하게 돼 있어 어느 게 허위라는 것인지, 증거가 2000여 개 파일 전부라는 것인지, 구성원 개인도 포함되는 것인지 등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기소된 지 2달이 넘었기 때문에 특정이 되길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공소사실 인부(인정 혹은 부인)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증거 인멸 등의 행위 자체를 특별히 부인하는 것은 없는데 법리적으로 인부하기 어렵다"며 "검찰에서 삼바 분식회계와 관련해서 영장을 청구한 걸로 아는데 특정해줘야 우리가 변론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소사실이 분명치 않고 무엇을 위한 증거인멸이었는지 등이 특정돼 있지 않아 변론 준비에 곤란하다는 얘기다. 또한, 인멸된 증거 관련해서도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파일의 2000여 개에 이르는 자료 중 어떤 게 증거인멸 혐의와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안모 대리 측 변호인은 안모 대리가 서버 공장초기화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으며, 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며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이에 재판부는 "검찰이 증거인멸 행위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 행위가 누구의 교사에 의해 진행됐는지 등을 정리해서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각각 기소된 사건들을 병합 심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변호인들끼리 상의하고 결정하기로 했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지만, 이날 피고인 전원이 출석했다. 이들은 삼바의 4조 5000억원대 고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된 증거를 인멸·위조하거나 이를 교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백모 상무와 서모 상무는 삼바와 에피스 임직원들이 검찰 수사에 대비하기 위해 증거 인멸을 지휘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안모 씨는 이 과정에서 삼바 공용서버를 빼돌리는 등 증거인멸 혐의를 받는다. 양모 상무와 이모 부장도 증거 인멸·위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 김모 부사장, 인사팀 박모 부사장, 이모 재경팀 부사장 등은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부는 공판준비기일을 한 차례 더 열어 공소사실과 병합심리에 대한 의견을 정리하기로 했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내달 26일이다.